기획문화
2012년 제5회 영주신춘문예 당선작 선정 발표부문별 당선자, 김경순(시), 문제완(시조), 박은주(수필)
전국에서 총 738편(시325, 시조 182, 수필 231) 응모
일간제주  |  ydy08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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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2.31  16: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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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영주신춘문예 당선자,(왼쪽부터)김경순(시),문제완(시조),박은주(수필)씨

사람중심 인터넷신문 ‘일간제주’가 인터넷 신문사상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제5회 2012 영주신춘문예’ 당선작을 선정 발표됐다.

시부문 당선작은 김경순(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씨의 ‘우리들의 인사법法’가, 시조부문 당선작은 문제완(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씨의 ‘아바타 한 켤레’가, 수필은 박은주(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씨의 ‘허기’가 결정됐다.

응모작 총 738편(시 325편, 시조 182편, 수필 231편)이며, 심사위원은 시부문에 유종인․변종태선생이, 시조부문은 이승은․강문신선생이, 수필은 김가영선생이 수고했다.

시상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추후 당선자들에게 개별적으로 공지될 예정이며, 시상식은 1월14일(토)오후 3시 제주시 연동 소재 삼해인관광호텔 대연회장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당선작가에게는 각각 100만원의 상금과 함께 인터넷신문 ‘일간제주’ 사장의 상패가 시상된다.


[시 당선작 및 응모작]

우리들의 인사법法

-김경순-

1.

지문이 세면대 밸브에 쌓여간다
암묵적인 약속처럼
조심스럽게 잡고 올렸다 내리며 안녕,
밸브를 감싸 쥐고 그 위에 나의 지문을 포갠다, 새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머드를 화석으로 만나듯
비 젖은 발자국에 서로의 무게로 깊이를 더하듯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매일 조우하게 되는 것일까.
만나지 않으려 이렇게 만나는 것일까.

안녕, 안녕,
헤어질 때와 같이.


2.

당신이 지나간 보도블럭을 밟았을 때
내가 사려던 책을 당신이 집어 들었을 때
한 소리에 동시에 고개를 돌렸을 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당신과 나도…

춥다는 핑계로 귀 접어 주머니에 넣고
입이 벌어져 있으면 자꾸만 우리는 말이 쏟아질 것 같아요,
아침마다 지우개로 입술을 지우던 나

당신과 나의 선들이 교차하던 순간
내가 웃었기에 당신은 울었다.

 

[응모작]

계속 되는, 점

1.

가족이 깰까 달빛도 사뿐히 걷는 밤
어둠과 맞닿은 자리에서 더욱 짙어지는 까만 점
밤은 그녀의 등과 마주해 블랙홀이 되었다
별 부스러기 가득한 두 평 우주를 호출하는 등


2.

태양은 햇빛을 저장하기 위해
치타의 몸에 까만 점을 무수히 찍었다지
그 모습이 마치 송송 뚫린 구멍 같아,
바람이 자꾸만 손가락을 넣어 보는 탓에
치타가 뛸 때마다 쉭-쉭-
휘파람 소리 난다지
줄넘기 하듯 그 구멍을 가볍게 통과하면
치타처럼 포효하며 달려볼 수 있을까.


3.

하늘이 바리케이드를 칩니다.
앞뒤가 없는 끝이 환한 구멍
그 안에 들어서면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응모작]

빛이 수직으로 서는 이유


종종 하늘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었다

한 치 어긋남 없이 주욱 뻗어나가는 빛

내가 쏘아올린 빛의 끝을 잡아당기고 있다

밤새 팽팽한 빛의 기둥에 제가 가진 가장 빛나는 것을 심어주던 하늘은

다음날이면 또 나를 보러 한숨에 일억 오천만 키로미터를 달려왔다

봉우리며 바위들이 위를 향해 열심히 날을 세우듯

바람이 닦고 지나간 자리를 지키는 나뭇가지처럼,


<시 당선소감>

-김경순-

   
▲ 김경순 작가(시 부문 당선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밥벌이를 핑계로 문학은 항상 제 생의 뒤안길에 자리했습니다. 말로는 사랑한다 하면서 순정하지 못한 행동들로 문학을 쓸쓸하게 만든 적 많았습니다. 아둔하고 졸렬하여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가 문학 때문이라고 타박하고 괴롭혔습니다. 이런 저에게 천형이 떨어졌습니다. 앞으로는 문학에 희생하라는 뜻으로 여기고 이 벌 달게 받겠습니다. 제 시에 마음 한 자리 내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바다 비린내 화인처럼 섬기며 사시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는 내 동생 하라와 찬섭. 우리 다섯 식구 조만간 따뜻한 밥 한 끼 먹어요.
낡지 않는 것은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일임을 알려주신 강형철 교수님, 항상 제 손 꼭 잡고 기운 북돋아 주시는 김양호 교수님, 따뜻한 숭의 소설세미나 선후배님들, 고맙습니다.
숭의 시세미나 마성의 여인 현경언니, 사랑스러운 윤지, 치명적인 매력의 여인 현정 선배, 닮고 싶은 상상력 효정, 너무 많은 것을 주기만 하는 재화 선배. 그대들과 머리 맞대고 골몰하는 시간 속에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이 모두를 언어의 채찍질로 기르고 계신 이윤설 선생님. 의지박약에 무기력으로 점철된 저를 참고 여기까지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학을 귀히 여기고 시를 모시며 사는 일로 보답하겠습니다.

<약력>
숭의여자대학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부 휴학 중


[시 심사평]

첫 행의 매력에 끌려

신인들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과거의 낡은 옷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우리 문학의 내일을 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이 보내온 한 단어,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어줄 각오를 하고 한 편 씩 페이지를 넘긴다. 문학이 죽었다고 개탄하는 시대, 돈이 안 되는 문학을 붙잡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문청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곳곳에 숨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 또한 적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 더구나 어느 순간 큰 나무로 자랄 만한 신인을 발견하면 이런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설렘과 기쁨보다는, 선배로서 떨림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번에 5회째를 맞는 영주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한 시편들은 800여 편에 이른다. 그 중에는 아직 응모의 기본이 안 된 사람들부터, 아직도 원고지에 자필로 정성껏 눌러쓴 글씨도 있고, 미국과 독일에서 국제우편으로 배달된 응모작품들도 섞여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일차적으로 시적 완성도, 새로운 감각, 습작의 수준 등을 고려해서 작품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작품이 한상림 씨의 「임플란트」 외 3편, 김창호 씨의 「자동이체」 외 3편, 정성수 씨의 「배롱나무」 외 2편, 이미화 씨의 「햇빛이 좋은 날」 외 3편, 김경순 씨의 「우리들의 인사법」 외 2편 등이었다.
우선 한상림 씨의 경우는, 일상에서 시적 대상이나 상황을 발견하는 힘은 좋으나, 이것들을 시적으로 형상화함에 있어 현실적 리얼리티에 안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좀 더 신인다운 상상력을 발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김창호 씨의 경우는, 시상은 잘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적 이미지를 만들어냄에 있어서 너무 서술적이며 산문적이라는 지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인이 자신의 진술로 설명을 하고 나면 독자들이 느껴야 할 것은 그만큼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정성수 씨의 경우도 앞의 김창호 씨와 비슷하게 서술적인 이미지가 지나치게 발견되어 산문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잡은 것은 이미화 씨와 김경순 씨의 작품들이다. 이미화 씨의 경우는 시적인 모티프를 형상화하고 시를 갈무리하는 품이 상당한 습작 이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발견되는 오자(誤字)들과 행과 연의 구분 등은 시를 읽어감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곤 했다. 반면에 김경순 씨의 경우는 첫 작품, 첫 행부터 읽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앞에서 지적한 다른 분들의 단점을 발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응모된 시들이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서 당선자로 밀어 손색이 없다는 데 합의했다.
오직 한 사람만을 뽑아야 하는 신춘문예의 속성으로 인해 굳이 최종심에 오른 분들의 작품에서 단점을 지적하긴 했으나, 기성 시인들도 그러한 점들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탈락한 분들께도 용기를 가지시라고, 위로의 말씀 전하며, 당선자에게는 큰 박수로 축하를 드린다. 아무쪼록 우리 문단의 큰 나무가 되시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 유종인․변종태(대표집필)

 


[시조 당선작 및 응모작]

아바타 한 켤레
  
-문제완-
  

잠이 깬 새벽녘에 물끄러미 바라보니
현관 쪽 신발들이 제 멋대로 잠들었다
고단한 입을 벌리고 코를 고는 시늉이다
 
늘 그렇게 아옹다옹 하루를 부대끼다
저들도 가족이라 저녁에 모여들어도
서로가 지나 온 길을 묻는 법 절대 없다
 
오고 가는 내 모든 길 묵묵히 따르느라
굽도 닳고 끈도 풀린 가여운 내 아바타여
부푸는 밤공기를 안고 나처럼 누웠구나

[응모작]


심해深海      

- 칠예가 전용복



옻나무 가지에는 일월日月의 물결무늬
깊은 어둠에서 한 줄기 빛을 찾듯
잉걸불 피어 올리며 화폭을 달구고 있다

휘휘 도는 칼끝에서 한 틈이 생겨나고
그쯤에서 섬광처럼 환하게 열리는 하늘
무너진 메구로가조엔* 살아나서 꿈틀댄다

검게 우는 붓질 따라 출렁이는 마음일 때
바다 속 숱한 상처가 진주로 영글듯이 
사나이 살아 온 궤적이 신의 손에 오롯하다 


* 1931년에 세워진 일본의 최고의 연회장을 전용복이 복원
 


[응모작]

우체통이 보인다


길모퉁이 돌아가면 서있는 빨간 우체통
혼자서 하루 종일 늦가을 비를 맞는다
따스한 안부 한 장을 받아본 지 얼마일까

메일과 카카오톡 넘치는 요즘세상
우표붙인 편지 들고 그 누가 오련마는
오늘은 빗줄기를 세며 가슴을 비워둔다

살아 온 나이만큼 너 또한 세월을 이고
반쯤은 희미하게 웃어도 주는 구나
그리워 성긴 시간 속 숨어들어 망을 본다

고요가 깔려있는 단칸방 하나 얻어
그럭저럭 철도 들며 너와 함께 건넌 시간
바람이 지나 가는지 휘파람 소리를 낸다

[시조 당선소감]

-문제완-

   
▲ 문제완 작가(시조부문 당선자)
문학 모임이 있던 12월 끝자락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온 몸에 후끈해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문밖은 희뜩희뜩 눈이 쌓이고 바람도 제법이었는데 순간 온 세상이 아늑해져왔습니다. 시조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서너 해 동안 신춘의 문을 기웃거렸으나 언제나 문전에서 돌아섰던 허전함의 연말이었는데, 당선이라니요. 세상 부러운 게 없어지는 한순간이었습니다. 제 책상머리 맡엔 ‘시조로 보고, 시조로 생각하고 시조를 꿈꾼다. 시조가 품을 열 때까지!’라는 경구가 붙여 있습니다. 평소 즐기던 사진 취미도, 인물화 그리기도 제쳐 두고 지난 몇 해를 오로지 시조에만 일념 했습니다.
추운 겨울을 앞서 내보내는 봄의 뜻을 이젠 알 것만 같습니다. 겨울을 견딘 씨앗만이 새싹을 돋게 하듯, 잠 못 이루던 날의 불빛마저도 고맙기만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조 세상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이 발걸음이, 오늘과 내일을 환하게 밝혀 줄 것을 믿습니다. 3장 6구의 아름다운 구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겠습니다.
어두운 문학의 길목마다 등불을 밝혀주신 스승님들의 은혜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부끄러운 제 작품에 손을 들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마음의 밀물로 달려갑니다. 오늘의 자리가 헛되지 않게 좋은 작품과 인품으로 시조의 길을 닦겠습니다.
늘 부족한 사내를 평생 믿고 따라준 아내와 아버지를 응원해준 애들에게도 기쁨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시조야말로 제 영혼의 아바타입니다.

ㅡ우체국 창가에서ㅡ

전남 순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제8회 광주광역시 시인협회 백일장 장원
제12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 최우수상 수상
근무처 : 화순 능주우체국(국장)

 

[시조 심사평]


서정의 진경과 흥미로운 상상력

여전히 시가 ‘금’이 되지 않는 오늘의 시대에도 신춘문예를 서성대는 영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물질이 해결하지 못하는 상당한 부분을 문학이 위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영주신춘문예 역시 예년에 비해 작품의 양과 질이 부쩍 늘었음을 밝힌다.
사유는 서정의 살이요, 서정은 사유의 힘줄이라서 우리 몸속에 거부감 없이 들어와 말의 개념을 정당화하고 언어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이번 심사도 주제의 밀도와 짙은 서정성에 바탕을 둔 작품을 눈여겨보며 인생의 애환을 통해 서정의 진경을 얼마만큼 담아냈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진주와 남강, 비봉산의 가을 정경을 팔검무로 묘사, 시조의 장과 장을 퉁소가락처럼 뽑아낸 김재길의<새벼리 戀歌>, 하루 종일 우리의 정신과 몸을 고스란히 이끌고 다니는 신발이야기를 풀어낸 문제완의<아바타 한 켤레>, 섬 島를 악보의 음표, 으뜸음자리와 높은음자리 ‘도’로 빗대어 다시 어머니의 무량한 사랑으로 거듭 앉힌 서상규의 <섬의 수의>, 폐지를 수거하여 생계를 꾸려가는 초로의 사내를 통해 연민과 암울한 현실 세태를 짚어낸 이우식의<빙벽氷壁>, 낡았으나 비루치 않고 해졌으나 허술치 않은 섬마을의 풍경을 담담하게 관조의 자세로 엮어낸 천유철의 <섬마을 여행길>, 지병으로 병원을 오가는 환자의 투병기록 속에 혈육의 애틋함을 진솔하게 녹여낸 허은호의 <햇살 한때>가 최종으로 올랐다.(가나다 순)
작품들이 보여주는 각각의 개성과 고른 호흡으로 심사에 상당한 고심이 있었음을 밝힌다. 그 중, 끝까지 따라와 선자들의 심금心琴을 튕긴 문제완의 <아바타 한 켤레>를 맨 윗자리에 놓았다.
온종일 주인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지나온 길을 묻는 법 절대 없다’는 아바타의 단호한 내면세계를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사물의 실체를 바탕으로 하되 견고한 현실 감각과 자기심화과정에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아울러 함께 투고된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일관성과 서정의 힘도 한 몫을 했다. 어딘가 불편함을 주는 시가 마침내 시의 영토를 확장한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다량의 조미료 맛이 아닌, 토속적인 맛을 낸 작품이 시조의 미래를 지켜 가리라 믿는다.
당선자에게 다함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며 최종에 오른 다섯 분께도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자세로 용의 해를 열어가길 바란다.


심사위원 이승은(글). 강문신


[수필 당선작]

허기

-박은주-

바바리를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바리가 참 잘 어울렸다. 내가 살던 바닷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세련된 외모에 키도 훤칠했다. 핏기없는 얼굴과 바람에 팔락이던 바바리 끝자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늦은 점심으로 허기진 배를 막 달래고 났을 때 그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를 보자마자 한 여자의 이름을 힘들게 뱉으며 아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집을 가르쳐달라 했다.
여자의 집에 도착한 그는 장승처럼 서 있었다. 한걸음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냥 보고만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집안을 기웃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없다는 내 말이 그의 귀에 닿지 않았다. 누군가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는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황토색 바바리 때문이었을까, 왠지 그가 바람을 업고 있는 흙벽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이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작은 동네를 흔들었다. 그 바람에 눈꺼풀 위에 앉아 있던 잠이 달아났다. 어른들은 잰걸음으로 소리를 따라갔다. 나도 뒤따랐다.
젊은 남자가 농약을 마셨다. 그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었다. 다급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발을 동동거리며 차가 오길 기다리는 사람과 달리 넋 나간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옷을 잡아 흔들며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여자의 아버지는 집안 망신이라며 벼락같은 소리로 딸을 야단쳤다.
사람들 틈으로 쓰러진 남자의 옷이 보였다. 눈에 익은 바바리였다. 그 남자였다. 장정 몇몇이 그 남자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온몸이 뻣뻣하다며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낮에 본 사람이 농약을 먹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동네 어른 한 분이 어린아이가 볼 것 못 된다며 나를 내쫓았다. 그날 밤 나는 몸이 돌덩이처럼 무겁고 뻣뻣해지는 무서운 꿈을 꾸었다.
다음 날, 어른들의 수군대는 소리가 내 귀까지 왔다. 그는 병원으로 갈 새도 없이 숨이 넘어갔다. 빈속에 약을 마셔 더 그랬다.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그가 우리 동네에 온 것은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미리 준비해온 농약을 마셨다. 남자를 본 동네 사람들은 잘생긴 인물이 아깝다며 혀를 찼다. 어떤 사람은 여자네 부모를 흉보기도 했다. 둘은 결혼식만 하지 않았지 같이 살았다는 것이다. 그 말끝에 젊은 사람이 숨이 빨리 끊어진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남자가 마신 농약은 적은 양이라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자식을 키우는 지금에야 그를 죽게 만든 것이 허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랑에 허기진 사람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했다. 그는 동네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랑을 받지 못해 가슴에는 늘 차가운 허기만이 돌았다.
언니는 그 허기진 가슴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 같은 사랑을 주지 않았을까. 어머니, 그에게 허기를 준 사람이지만 한없이 그리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언니와 사는 동안 그리운 어머니를 만난 듯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 언니를 잃는다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아니, 또다시 허기진 가슴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무서웠을 것이다. 그에게 허기는 삶을 포기할 만큼 잔인한 것이었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바바리를 즐겨 입는다. 길을 가다 황토색 바바리를 입은 젊은이를 보면 그 남자가 떠오른다. 그의 허기진 얼굴이 잊히질 않는다.


[수필 당선소감]

-박은주-

   
▲ 박은주 작가(수필부문 당선자)
감기몸살 때문에 몸이 바위처럼 무거웠습니다. 한해를 골골거리며 아프게 마무리하는 것 같아 마음도 덩달아 깊은 바다에 빠지듯 가라앉고 있을 때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소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손이 되어 심해에 가라앉은 나를 건져준 구원의 손길 같았습니다. 수필을 알아 좋고 꿈같은 소식을 듣게 되어 참 행복합니다.

수필을 쓰다 보면 끼니를 잊어가며 손이 저리도록 글과 씨름을 할 때가 있습니다. 기억의 우물에서 추억을 떠 문장을 안치면 밥이 되듯 글 한 편이 만들어지곤 했습니다. 어느 땐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밥처럼 새까맣게 타, 내 마음을 태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수필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고 나를 사랑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에 관심과 격려해준 분들이 많습니다. 언제나 옆에서 칭찬만 해주는 남편과 딸과 두 아들, 열심히 내 글을 읽어주시는 시어머니, 길동무 같은 ‘포항수필사랑’ 문우들, 수필을 가르쳐주신 이화련 선생님, 김종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어설픈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정말 고맙습니다. 수필가에게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제주매일신문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약력)
‘포항수필사랑’회원
주소 :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
 

[수필 심사평]

박은주의 ‘허기’

죽음은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글 속에서도 대사건이다.
인생의 생과 사에 관한 것은 모두 작가의 일이다.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때, 왜? 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
나<작자>는 어렸을 적 목격한 충격적인 한 남자의 죽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기억의 저변에 두지 않고 어머니가 된 지금 그 왜? 라는 질문에 연연하며 고심한다.
나<작자>의 관찰의 눈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았다.
기억과 인생의 연륜을 경험으로 대답해 내놓는다.
수필에서 드물게 영화에서 사용되는 ‘컷 백’형식을 엿볼수 있었으며, 그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수필은 진실을 주시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고 사회와의 연관을 구할 때 강력한 예술적 주장을 펼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작가가 되리라는 걸 확신해본다.

심사위원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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