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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간에서 길을 잃다

-조중연-

지도에 의하면 이쯤이다. 서귀포시 서남동 1361-5번지. 고근산에서 5~6백 미
터 북쪽 방향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집이고, 지도에도 표기돼 있지 않은 번지
라 긴장이 된다. 그 번지 인근은 별장 집약촌이다. 별장을 기준으로 설명한다면 간
단히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번 경우는 집 위치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
다. 육지에서 다른 사람이 대신 접수를 한 것이다. 작업지시서에는 사무적인 어투
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전화 불통. 할머니 혼자 사심. 신고자 서울 아들. 011-345-xxxx. 빠른 방문 원함.

월요일 아침부터 잡은 첫 작업이란 게 고작 이런 것이다. 일주일을 여는 관문 치
고는 지지리도 운이 없는 고장건이다. 한 시간마다 고장을 한 건씩 고쳐야 하는 시
스템에서, 서남동 1361-5번지는 부담이 아닐 수가 없다. 아래 신시가지라면 인구
밀집지역이라 쉽게 집을 찾을 수 있고, 다음 약속건도 그 주변일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새주소 사업을 시작하면서 발간된 지도책에도 번지가 애매모호하게 표시되
어 있다. 지도상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표기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여 나
는 고장의 신고자인 서울 아들이란 작자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보려 했으나,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기계음만 들렸다.

그렇다면 실제로 찾아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대략 집의 위치를 보면 외지 사람들
이 들어와서 사는 별장 근처가 맞다. 이곳은 전통의 중산간 마을이 아니라 최근에
형성된 전략적인 별장촌이다. 중산간에서는 집을 보면 대략 제주도 본토박이의 집
인지, 아니면 외지인의 집인지 구분할 수가 있다. 가장 쉬운 식별 방법은 대문에
캡스나 세콤 같은 무인경비회사 마크가 붙어 있느냐 없느냐를 보는 것이다. 넓은
땅을 차지하고 단단한 시멘트벽으로 주위와 차단시키고, 무인경비회사 마크가 붙어
있는 곳이라면 십중팔구 외지인의 집일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은 딱 붙어 꼼짝도
안하는 감시 카메라가 걸려있기도 하다. 그것은 집 주인이 허락하지 않는 한 어떤
방문자도 사절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런 고급스런 별장촌 어디엔가 할머니 집이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마을 공
동체로부터 방출되어 유배 생활을 하는 자들의 공간. 아니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공간, 부동산 업자들의 마구잡이식 별장지 개발로 만들어진 극히 개인적인 공간.
외지인들의 별장촌…… 혹시 모른다,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새로 생긴 별
장이라면 부자집 할머니가 수고했다며 담배값이라도 쥐어줄지.

10년 된 갤로퍼밴은 이제 수명이 다 되었는지, 가래를 연신 뱉어내는 늙은이처
럼, 뿌연 매연을 쏟아내고 있다. 차량 검사 기간만 되면 노심초사다. 해마다 검사
업체를 찾아가서 삼고초려 끝에 간신히 정기 검사에 통과하고 있다. 차는 라디에이
터까지 터져서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물을 채워 넣어야 한다. 물을 가득 담은 1리터
짜리 삼다수 페트병을 항상 도시락처럼 지참해야 한다. 덜덜덜 핸들이 흔들리는 차
를 몰고 있으니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고근산 고개를 넘어 삼백 미터 정도를 달렸다. 이미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내쳐 달리고 있다. 후덥지근한 바람을 피해 에어컨을 틀어보지만, 차가 멈출 것 같
이 힘이 떨어지고 알피엠이 급속도로 올라간다. 에어컨 트는 것을 포기한 채 차창
을 열고 달린다. 그래도 나무가 많은 중산간 지역이라 선선한 느낌도 들고 공기도
상쾌하다. 나는 알고 있다. 차에서 내려 남쪽을 바라보면 서귀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기막힌 경치라는 것을. 그런 이유로 이곳에 별장이 많이 생긴다는 사실
을. 자리만 좋다면야 건축허가가 나지 않을 듯한 장소에도 어떻게든 별장이 들어서
고 보는 것이다.

익히 낯익은 별장 앞에 차를 세우고 집을 찾는다. 지도로 보면 이 별장을 기준으
로 해서 북동쪽 방향인데 딱히 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별장은 아닌 게 분명
하다. 삼십여 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집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운이 좋았다면 두
번째 작업을 향해 출발할 수도 있는 시각이다. 자세히 보고 있으니 동쪽으로 오솔
길이 나 있다. 이곳이다,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고개를 들어 통신주를 보니 오
솔길을 따라 전화선이 날아가 있다. 그렇다면 전화를 쓰고 있다는 뜻. 이곳이 할머
니 집이라는 데 확신을 더해준다. 길을 따라 오 분 정도 걸어가니 집이 형체를 드
러낸다.

이상한 기운이 풍기는 집이다. 시간 감각이나 공간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희미한 집이다. 서재에 오랫동안 보관된 책처럼,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집이다.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마냥 황량하기 그지없고, 땅과 집을 통째로 뒤집어
보면 지하에 숨어있던 삼나무숲이 나타날 것만 같다. 오솔길 주변에는 누가 그랬는
지 작은 대나무가 심겨 있다. 분명히 사람 손으로 심은 게 틀림없다. 집 뒤로는 오
래 전부터 있었을 법한 대나무밭이 보인다. 원래 집터를 고르는 데는 대나무가 있
는 곳이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험한 몰골을 하고 있어도 대나무가
있는 곳은 사람이 살 수 있다고 했다. 땅을 볼 줄 알던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
다.

잦은 바람 때문인지 지면에 고슴도치처럼 딱 달라붙은 낮은 초가집이다. 그것보
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집과 같이 붙어있는 버드나무다. 한 아름은 족히 넘을
듯한 나무다. 이런 집이 별장촌에 왜 있는 것일까. 집 가까이에 큰 나무가 있으면
좋은 터가 아니라는 말도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어째서 계속 아버지의 말씀
이 떠오르는 것일까…… 햇볕은 잘 들고 있지만, 뭐랄까,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
다. 묘한 기운. 딱히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심상치 않은 분위기. 환함과 동시
에 음산한 분위기. 이런 부조화. 시간 감각이 사라진 듯한 집 주위의 풍경들. 마치
화장터 주위의 후덥지근한 열기 같은…… 그제야 나는 이 정체모를 감각의 상실과
스산한 기운이 버드나무로부터 연유한다고 짐작해본다.

뒤늦게 인기척을 느꼈는지,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보아하니
작업지시서에 적힌 혼자 사는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내가 자신의 집에 대해 평가하
는 것을 방해라도 하듯이 바로 말을 붙인다.

“전화국에서 왔습니까?”

할머니가 물었다. 이런 중산간의 첩첩산중에 혼자 사는 것도 이상할뿐더러, 할머
니가 정확한 표준어를 쓰고 있다는 게 더 수상했다.

“집 찾아오는 데만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나 역시 표준말로 답한다. 괜히 엄살을 부려 늦게 도착한 것을 무마할 생각이다.
할머니가 안내해서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 깨끗하다. 결국 이런 정도로 깨끗하
다면 침해에 걸린 노파도 아니란 뜻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몰랐지만, 앞에서 보니
아주 정정한 모습이다. 허리를 곧게 세운 자세가 아직 원기 충천한 모습이다. 할머
니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물어서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호
미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밖에 뭔가 심을 모양이다.

집에서 전화기를 빼고 선로시험을 해보니 단선(斷線)이다. 발신음이 나지 않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서 선이 끊긴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집의 인입선부터 전주까
지 역방향으로 전화선의 경로를 추적한다. 아뿔싸, 음산한 버드나무에 선이 걸려
있다. 큰 길에서부터 이곳까지 한 번에 인입선이 들어왔는데, 중간에 마땅한 전주
가 없어 버드나무에 매어놓은 것이다. 큰길로 나가 차에서 사다리를 꺼내들고 버드
나무에 받친다. 예상대로 바람 때문에 버드나무와 선이 마찰되어 한 가닥이 끊겨
있다. 버드나무의 음산한 기운 때문인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시계를 보니 열
시가 넘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빨리 다음 고장을 받아야 일이 밀리지
않을 것이다.

허나 할머니는 나를 그냥 놓아줄 기세가 아니다. 먼 길을 오신 손님이니 커피 한
잔은 꼭 마시고 가야 한다고 우긴다. 시간이 초과되어 초조했지만 왠지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할머니가 커피를 준비하러 간 사이, 나는 마룻바닥에 앉아 집안
을 구경한다. 정말이지 편집증환자처럼 모든 게 잘 정돈되어 있다.

“할머니, 이곳에 혼자 사세요?”

“그렇게 되었지.”

“밤이 되면 무서울 것 같은데요. TV도 없이 이런 산중에 사시려면요.”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견딜 만하다네, 젊은이.”

예의바른 할머니다. 대화에 빈틈이 없다. 할머니는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다가 이
윽고 신기(神氣)가 있는 눈으로 나를 훑어본다.

“젊은이는 고향이 어딘가?”

“아, 예…….”

일을 하면서 제주도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 순간이 항상 곤혹스러웠다. 제
주도 사람들은 내가 어떤 이유로 이런 변방의 낙후된 섬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그 질문 속에는, 당신이 육지에서 무슨 죄를 지어서 도망을 왔든지, 아
니면 말 못할 사정에 의해 유배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녹아 있다. 그럴 때마다 나
는 제주도 사람이 얘기에 굶주린 사람이 아니면, 형사의 후손이 분명하다고 확신한
다. 또한 그들은 내가 언제쯤 이 섬에서 나갈 지 궁금해 죽겠는 모양이다. 나는 그
런 질문이 싫었다. 내가 무슨 까닭으로 이곳에 있는지, 혹은 여기에 계속 살 것인
지 아닌지 당신들에게 대답할 이유가 무엇인가.

할머니는 눈치를 채고 서둘러 말을 이어 붙인다.

“아무튼 객지에서 생활을 하는 게 어려울 게야. 나도, 돌아간 영감도 그랬거든.
앞으로 심심하면 자주 들르도록 하게. 뭐 변변치 않지만, 따뜻한 커피 한 잔 정도
는 대접할 수 있으니까.”

“그럴게요. 서울 아드님에게서 전화가 자주 오는 모양입니다.”

“부질없는 짓이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부산을 떠는 거라네.”

순간 할머니의 얼굴이 소나기를 품은 먹구름처럼 어두워진다. 마치 할머니도 나
의 곤란한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자네도 나와
같이 외로운 처지이니, 자주 와서 말벗이라도 해주게. 우리 아들놈 연배로구먼.” 하
고 말했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내게는 제주도 토착민보다 정겨운 것이다.

중산간 도로로 내려오자 핸드폰 벨이 울린다. 홍 팀장이다.

“무사 전화를 안받암수과?”

짜증 섞인 목소리다. 아마도 할머니 집에서는 핸드폰이 안 터졌던 모양이다. 하
긴 9시 고장을 한 시간 반 동안 고쳤으니 열 시 예약 고장이 밀려있을 터였다.

“미안합니다. 집 찾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네요.”

“경허민 전화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우꽈?”

차가운 목소리다. 이 사람은 뭐 때문에 나한테 적개심을 품고 있는 것일까. 연배
도 비슷해서 술 한 잔 하면 금세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이인데…… 하긴 이 사람
만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는데 끝까지 반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홍 팀장이
아니라 사장에게 고용된 상태이므로 가볍게 무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회사
의 숨은 실력자였다. 사람을 쓰고 해고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그게 벌써 삼년 가까이 된 일이다.
삼년 내내 나만 보면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가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결국 내게 이 말을 듣고 싶어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그 속내를 알아차리고 미리 사과를 한다. 아, 입맛이 쓰다.

태풍 나리가 제주도를 정면으로 관통했다. 산북에서는 사람이 몇 명 죽고 피해가
심각한 모양이었다. 허나 서귀포에서는 인명 피해는 없었다. 다만 거센 바람으로
인해 밀감밭 인근의 방풍림이 많이 쓰러져서 사람들은 피해복구에 열을 올리고 있
었다.

올 여름은 지난해에 비해서 조용한 편이었다. 작년 같은 경우에는 인터넷을 사용
하는 집마다 모뎀이 번개에 맞아서 한동안 고생을 해야 했다. 서귀포 인근에 낙뢰
가 한 번 떨어지면 일주일 내내 비상근무를 해야 했다. 평소 같으면 5~60건의 고
장 작업이 올라오지만, 낙뢰가 치면 하루에 200건 넘게 접수되는 것은 순식간이었
다. 그럴 경우 일주일 동안 꼬박 여덟 시까지 일해야 고장이 잡히는데, 작년에는 6
월 말부터 추석 전까지 매 주말마다 낙뢰가 떨어졌다. 눈코 뜰 새 없이 날아다녀도
고장 접수건이 줄어들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직장을 때려치울 생각까지 했을까. 그
러나 일자리가 없는 서귀포의 상황으로 볼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그저 거대통신회사의 손바닥 만한 하청 회사에서 박봉을 견디며 일해야 할뿐 다른
대안이 없었다. 올 여름은 작년에 비하면 천국과 같은 상황이었다. 낙뢰 피해가 전
무하다시피 했다. 허나 일기예보와 달리 태풍 나리가 제주도를 강타한 것이다.

태풍 나리가 제주도 인근에 다가올 때만 해도 소형 태풍이라 예고되었다. 제주도
를 비껴갈 거라 예상된 태풍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제주도에 상륙했다. 그러면서
중형급으로 바뀌고, 짧은 시간 동안 빠른 속도로 섬을 휩쓸고 지나갔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보니 이건 난장판이었다. 고장은 낙뢰 때와 마찬가지로 300건이 넘
게 접수되어 있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낙뢰 피해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의 고장이
었다. 낙뢰 때는 집에 방문해서 모뎀을 바꿔주는 간단한 작업이었으나, 이번에는
집집마다 멀쩡한 인입선이 다 끊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가는 족족 새
로운 도시를 건설하듯 선을 새로 깔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접수된 고장건이 모두
그런 타입이었다.

그 할머니 집도 신고가 되었다. 이번에도 할머니가 직접 접수하지 않았다.

계속 통화중. 할머니만 계심. 연락처 서울 아들. 011-345-xxxx. 빠른 조치 바람.

서울 아들에게 연락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저번처럼
그냥 무턱대고 찾아가보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이번 태풍에 중산간 마을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집에서 올래를 손질하고 있었다. 쓰러진 대나무를 정성들여 일으켜 세
우고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좀 전에 들어오다 본 별장과
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태풍 나리가 세긴 셌는지 견고하게 지은 별장에도 피해가
있는 모양이었다. 도로 입구부터 캡스를 비롯한, 집수리 전문점이라는 광고가 붙은
트럭으로부터 페인트 차량까지 분잡했다. 감시카메라가 휘어질 정도로 바람이 강했
던 모양이었다. 그에 비하면 할머니의 집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할머니는 예의 나를 보고 뚫어져라 시선을 모았다. 정정하기는 해도 눈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나 할머니가 내가 전화국 직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얼굴
이 일그러졌다. 바로 웃는 얼굴로 바뀌었지만 찰나에 그런 표정이 지나간 것은 사
실이었다.

“전화가 고장났다고 접수되었군요.”

“전화가 고장난 것 같더군.”

“태풍 피해일 것 같은데요. 일단 먼저 확인해볼게요.”

할머니는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안방의 수화기를 들자 먹통
이었다. 선로 테스트를 해보니 혼선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거나, 두 가닥 선이 서
로 달라붙은 증상. 전에 버드나무 가지에서 접점을 만든 것이 잘못되었나 확인해봤
지만, 원인은 집안에 있었다. 나는 올래 끝에 있는 할머니를 소리쳐 불렀다.

할머니 집에는 전화기가 두 대 있었다. 다른 전화기 위치를 가르쳐주어서 보니
수화기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이렇듯 정정한 할머니가 수화
기를 내려놓았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일부러 수화기를 내려놓은 것이 분명했
다. 내 눈치가 이상하자 할머니가 당황한 낯빛으로 변명하듯이 말했다. 손에는 호
미가 들려 있었다.

“서울 며느리한테 자꾸 전화가 와서 신경이 쓰여서.”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부모 자식 간에 전화통화를 자주하는 것은 예의이다.
아침저녁으로 부모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듯이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뭐가 신경이
쓰인단 말인가.

“그게,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뭐랄까……. 커피라도 한 잔 들고 가게.”

가끔씩 이런 고장도 걸려야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회사에는 선을 깔았다고 에둘
러 보고하고 잠깐 쉬었다 갈 생각이었다. 할머니가 커피를 내왔다.

“여긴 대나무가 참 잘 자라. 길에서부터 집까지 엊그저께 다 심었어. 그런데 태풍
이 와서 볼품없이 쓰러졌지 뭐야.”

“고향이 제주도가 아니시죠?”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질문을 했다. 나도 가학자가 되어 할머니가 뭐라 답하는지
듣고 싶었다.

“고향? 맞아. 난 서울에서만 평생을 살았어. 하지만 영감은 원래 제주도 태생이
야. 자식도 아들놈이 둘이나 있지. 여기에서 여생을 즐기면서 살려고 했는데, 결국
은 이런 몰골이지 뭔가?”

할머니에게서 남다른 기품이 풍기고 있었다. 매일 사람들을 상대하다가 보면 아
줌마와 사모님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 뭐랄까, 딱히 말하긴 어려우나 보통
사람들은 아줌마라고 부르면 되는데, 어떤 사람은 아줌마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
지 않는 경우가 있다. 기품이라든가, 집안의 분위기가 그런 경우를 만든다. 이 할
머니는 여태까지 아줌마로 산 사람이 아니라, 사모님으로 산 사람이다. 현재는 보
잘 것 없어 보이지만, 분명히 사모님의 기품이 흐르고 있다.

“영감이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제주도에 내려왔드랬어. 밀감밭을 사서 슬슬 농사
나 지으면서 살려고 말이야. 서귀포는 햇볕이 잘 드는 축복받은 땅이야. 서울을 떠
나기 전에 두 아들놈에게 재산을 나눠주었다네. 영감하고 나하고 살아갈 돈만 빼고
모두 처분했지. 집도 땅도 다 처분했어. 영감도 이곳에서 태어났을 뿐 제주도 사람
이 아니라 처음에는 모든 게 어색하기만 했지. 우리가 서귀포에 와서 정착한 곳이
저 밑 서남동이야.”

할아버지는 마땅한 감귤밭이 매물로 나오기를 기다리며 서남동에 집을 얻었다.
모든 잔치와 궂은일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 생각
이었다. 또한 어디 좋은 밭이 나오면 소개해달라고 부탁도 했다. 할아버지는 두 살
남짓까지 서남동에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제주도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형님,하면서 마을 사람도 할아버지를 잘 따랐다. 중산간에 별장을 짓고
외롭게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제주도 적응이 잘 된 것처럼 보였다. 마을 잔치에도
찾아가고, 반상회에도 참석했다. 서울에서 손자가 놀러왔을 때도 할아버지는 운전
사가 되어 손수 제주도 구경을 시켜주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하는 일 없이 빈둥
거리다 보니 농사를 짓고 싶어졌다. 동네 사람들은 아직 마땅한 땅이 나오지 않았
다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믿었다. 그 해 여
름이 지나갈 무렵 강력한 태풍이 제주도를 강타했다. 마을 사람들의 밀감밭에도 피
해가 상당했고, 할아버지는 연습 삼아 그들의 밭에 가서 피해를 확인하고 복구 작
업을 도와주었다. 그때 할아버지 연배의 동네 이장 고씨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태풍 매미란 놈 때문에 이번 농사는 잘 안될 것 같으니까 내년에 밭을 사십서.
피해가 장난 아니우다.”

그랬다. 할아버지가 생각해보아도 피해를 입은 밭을 사서 원상태로 복구하는 것
은 힘에 겨운 일이었다. 내년쯤 되어 정상 궤도에 오르면 그 때 사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밭을 구하기 전까지는 날품팔이라도 해서 경험을 쌓으려는 생각이었
다. 허나 그 결정이 어떻게 마을에 퍼졌는지 몰라도, 이후에 할아버지에게 돈을 꾸
러 오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겼다. 처음에 온 사람은 올해 밀감 팔면 갚겠다면서 돈
을 빌렸다. 밭을 구할 정도니까 할아버지에게 꽤 많은 현찰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할아버지는 내년에나 땅을 살 예정이었으므로 약간의 이자를 받기로 하고
돈을 빌려주었다. 동네 사람이니 서울과 같이 빡빡하게 차용증을 쓰지 않았고, 만
약에 문제가 생겨도 밀감 팔 때 돈을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밭 살
돈의 거의 전부를 빌려줬다. 꼬박꼬박 이자가 들어와서 용돈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어느 날 보니 돈 빌려간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지 않는 거야. 한
때 유행처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이지. 서귀포 사람들이고, 동네 사람들이었
지만, 어느 순간에 열 명 가까이 되던 채무자들이 동시에 사라진 거라 이 말이야.
그래도 영감은 그 집에서 밀감을 팔 때 갚으려니 해서 기다렸지. 허나 그 집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떼는 거야. 증거를 대라고 하더구만. 아차, 싶은 순간이었
지.”

할아버지는 자리에 몸져누웠다. 자신에게 빌린 돈 때문에 고향을 등지는 사람들
이 생겼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새해가 밝아 설날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집을 찾지
않았다. 한두 명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사과를 하는 집도 있었다. 허나 땅을
사려고 모아둔 돈은 허공으로 날아간 뒤였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 하고 후회
를 했다. 살지는 않았어도 여기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이렇게 매몰차게 대할 수 있
는가, 부아가 치밀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할아버지의 집에는 동네 사람들이 찾
아오지 않았다. 잔치도 자기들끼리 연락하고, 애사가 있어도 소식을 띄우지 않았
다. 아예 할아버지집 올래 앞에는 사람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어느 날 사람이 찾아왔다. 할아버지와 동감내기였던 마을의 유지 고씨였다. 밀감
밭을 좀 있다가 사라고 충고한 자였다. 점잖은 표정을 하고 베지밀 한 박스를 들고
찾아왔다. 할머니는 밖에서 대화를 엿들었다.

“자네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있나?”

할아버지는 무슨 뜻인가 했다. 아버지라면 제주도에서 자신을 낳고 살다가 서울
로 올라간 사람이 아니던가. 내내 평온하시던 아버지. 육이오 전쟁 때 다쳐서 상이
용사가 되고, 이후 공직에 계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할아버지가 모르겠다는 표정
을 짓자, 고씨가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다.

“자네 아버지는 서남 마을에서 유명한 서북청년이었다네.”

할아버지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얼굴이 납빛으로 변했다. 평생 아버지에게서 그
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육이오 전쟁 당시 용감한 병사였
고, 서울 수복 이후 북진하던 날을 기념해서 국군의 날이 제정되었다고 증언했으
며, 일사후퇴의 아픔을 눈물로 얘기했었다. 후에 남북이산가족 찾기에도 적극적으
로 참여하였으나, 북에 두고 온 부모와 끝내 상봉하지 못했다. 죽을 당시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게 해달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허나
지금 고씨가 말하는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알고 있던 아버지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침묵했다. 할머니는 무슨 얘기인가 알아들었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자네에게 땅을 팔면 안 된다는 말이 마을에서 돌았네. 벌써 오십
년도 넘은 일이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가슴 저 밑바닥에는 앙금이 남아있었던 모양
이야.”

할아버지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이 좋아지고, 살 만한 세상이 왔다지만,
제주도 토박이들은 마치 본능처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4·3의 아픔에 대해
은연중에 알고 있는 것이다.

“자네 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소리를 꺼내는 것은 순서가 맞
지 않다고 보이네. 일테면 이런 말은 내가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들었어야 옳은
것이고, 겉으로는 순박한 촌부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속으로 저 놈은 악질 서북
청년단의 자식이야, 하고 생각하는 게 어디 상식적으로 말이나 되나? 내가 자네들
을 해하러 왔는가? 그래서 내게 돈을 꾸어가고 다들 사라졌단 말인가? 어딘가 본
질은 호도되고 핑계를 급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자네 말이 옳아. 돈 문제는 자네 아버지 문제와 별개지. 하지만, 생각해보게. 자
네가 종교를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자네에게 원죄가 있다고 믿네. 무슨 뜻인 줄
알겠는가?”

“내 아버지가 나에게 원죄다?”

고씨는 대답 대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할아버지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언급
할 수 없는 범위의 일이라 뭐라 대꾸하기도 난처했다.

“마을 사람들이 자네에게 돈을 꾼 것은 일반적인 일이야. 뭐랄까 돈이 급하니까
꾸게 된 것이고, 갚을 능력이 안 되니까 도망간 것뿐이라구. 거기에 불순한 의도같
은 것은 없네. 그걸 알아주게. 서울이나 여타 도시처럼 매일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
내리는 사건 사고일 뿐이니까. 나도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빨리 돈을 갚도록 조
언하겠네. 안되면 성의라도 보이게 만들겠네. 내 마을 사람들은 대표해서 말하지.
정말이지,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

할아버지는 그로부터 보름 후 제초제를 먹고 자살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돈
을 못 받아서 자살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할머니는 얼굴을 들고 마을을
나다닐 수 없었다. 처음으로 할머니는 제주도에 온 것을 후회했다. 그냥 서울에서
살았으면 될 것을. 별 어려움 없이 아파트 노인정에 가서 수다나 떨고, 내기 바둑
도 두면서 편안히 살 걸, 말년에 무슨 호강을 하겠다고 반기지도 않는 고향에 와서
객사를 한단 말인가.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돈을 꾸어간 사람들이 하나둘 마을에 들어왔
다. 할머니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게 더 힘들었다. 돈에 대해 언급할 생각이 없
는데, 마을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피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돈 문제가 아니
라 할아버지의 자살과 엮여서 죄책감이 더 커진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결국 파산을
맞았다. 벌이도 없었을 뿐더러 잡일을 하려고 해도 동네에서 끼어주지 않았다. 마
음을 굳게 먹고 참여하려고 해도 마을 공동체에서 자꾸 소외되는 느낌이었다. 이쯤
해서 악몽을 꾼 셈치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결국 마을에서 합의를 해서 이 집을 구해줬다네. 마을에서 꽤 떨어졌으니 서로
얼굴 부딪칠 일도 없고 불편할 일도 없었지. 서로 돌아가면서 빈집을 청소하고, 수
리도 해주었지. 세끼는 챙겨먹지 못해도 배는 곯지 않게 배려를 해줬고……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더구먼. 요 옆에 보이는 버드나무가 처음에는 을씨년스러워서
무섭기도 했는데, 돌아간 영감 같아서 든든해. 죽은 영감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저
버드나무에 머무는 것 같은 느낌이야. 다 지난 일이지만, 총각 시절에 영감이 영원
히 나와 함께 하겠다고 얼굴까지 빨개지면서 고백했었거든. 그렇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남자가 그런 고백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용기를 냈겠어. 그래서 영감에게 넘
어갔지만 말이야. 결국 나는 지금 영감과 꿈꾸던 삶을 사는 것 같아 행복하다네.
이렇게 살았으면 됐는데, 괜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것 같구먼, 젊은이.”

나는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할머니는 손자에게 주
려고 숨겨놓았던 곶감을 꺼내듯이 눈물을 흘렸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람과 마주앉아 얘기를 한 게 참 오랜만이야. 젊은이, 다음에
도 와서 말동무가 되어주게.”

할머니 집을 나와 길을 잃을 뻔했다. 오던 길을 그대로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는
데, 다른 길로 들었다가 길을 잃었다. 그러다가 새로 지은 별장 앞에서 유턴을 했
다. 방향감각이 없어 무작정 가다보니 한라산 방향이었다. 차 엔진소리를 듣고 별
장 안의 진돗개 한 마리가 사납게 짖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출입금지 지역에 들어
왔으므로, 엽총을 겨누고 나를 지켜보는 장면 같았다. 그래, 당신도 처음에는 이상
을 가지고 왔겠지. 허나 고립되다 고립되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 거야. 불쌍한 인간
같으니라구. 마트에 갈 때마다 외제차를 끌고 나가고, 주말마다 처지가 비슷한 사
람을 불러 파티를 하며 요즘 땅 시세가 어떻다는 둥 수다를 떨고, 캡스 같은 경비
회사가 철통같이 집을 지키고 있으니 사는 맛이 날 것이다. 게다가 비싼 순수혈통
의 진돗개를 키우고 있으니 안전은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문득,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여기가 내 삶의 어디인지 방향감각이 서지
않았다.

태풍 나리 고장이 잡히면서 회사에서 회식을 시켜주었다. 꼬박 보름 동안 하루에
열 건 넘게 선을 깔고 다녔으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가는 곳마다 끊어진 선을
새로 펴느라 밤이 되면 막노동을 한 것처럼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고장이 하루
에 오십여 건으로 줄자 회사에서 수고했다면서 회식 자리를 마련했다.

홍 팀장은 분위기가 무르익자 2차로 단란주점에 가자고 했다. 벌써 소주 한 병씩
은 마셨기 때문에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제주도에 내려온 지 오년이 되었고, 회사
에 다닌 지 3년이 넘었기 때문에 나도 회사에서 승진할 케이스였다. 메인 팀장 자
리는 아니어도 작은 조 팀장 자리 정도는 차지할 서열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승진
에 대한 얘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서로 승진할 욕심에 1차 회식 자리에서도 말이
많이 나왔고,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만, 마땅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다만 회사의
고유 권한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을 뿐이었다.

2차에서 노래도 부르고, 폭탄주도 마시다가 보니 새벽 한 시가 넘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자리로 돌아오다가 보니 대여섯 명이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다음 팀
장으로 누가 추천될 것인가 허심탄회하게 대화가 오갔다. 단연 누구나의 관심사였
다.

“K씨는 어떵헙니까? 일도 잘하고 그만하면 능력도 있고…….”

“맞수다. 그 형이 팀장이 되어야 헙니다. 우리보다 나이도 많고, 애들도 잘 따르
고, 괜찮지 않습니까?”

“하지만 K는 육지놈이주게.”

그 한마디로 술판은 평정되었다. 더 이상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니, 내 다
음 서열의 후보자가 기회를 얻었다 싶어 씨익, 웃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
지 알고 있었다. 자리에 들어가면 어색해질까봐 나는 화장실을 갔다가 집에 간 것
처럼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집까지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K는 육지놈이주게…… 나
는 육지놈이다…….

할머니집 고장이 또 떴다. 태풍 나리가 지나가고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중복 고장
접수가 되었으므로 나는 홍 팀장에게 불려갔다. 고치고 나면 명함을 건네줘서 최대
한 한 달 안에는 재고장 접수가 되지 않게 하라고 교육했는데, 도대체 말을 들어먹
지 않는다면서 언성을 높였다. 이 사람은 왜 나에게 공격적일까. 내가 당신한테 피
해를 준 게 뭐가 있는가. 정말 내가 육지놈이라고 해서 그렇단 말인가.

고장 신고 내용이 보니 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건 뭐랄까, 심하게 말하자면, 똥개
훈련이었다. 개 같은 놈 같으니라고. 궁금하면 자기가 와서 볼 것이지 고장 접수를
하고 지랄이야…… 저는 다리가 없나, 시팔. 욕지거리가 솟구쳤다.

사흘째 전화 안받음. 전화벨은 가는데 전화 안받음. 서울 아들 신고. 선로기술과
시험 결과 선로. 빠른 조치 바람. 011-345-xxxx.

선로 시험 결과 선로라면 전화기가 정상적으로 달려 있다는 뜻이었다. 국사에서
선로 시험을 해서 전화기가 물려 있고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전화를 안 받는
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에서 신고를 한 것이다. 할머니가 어디 놀러갔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저번처럼 할머니가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은 이상 다시 고장날 이유가 없었
다. 선이 끊겼다면 선로 시험 결과로 단선(斷線)이 나와야 옳았다.

바람이 몹시도 좋은 가을날이었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높았으며, 늦더위를 막
물리친 가을 공기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이 깨끗한 공기가 내 고물차에 의
해 더럽혀지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팀장으로 승진하면 중고차라도 할부로 사려
고 했는데, 물 건너가고 말았다. 아마도 이 차와 나 사이의 인연이 질기다 못해 딱
달라붙은 모양이었다.

별장을 지나서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올래가 시작되는 지점에 차를 세웠다. 이
번에도 별 고장이 아니라면 할머니에게 한 마디 쏘아붙일 생각이었다. 수화기도 내
려놓지 말고, 서울 아들한테 전화가 오면 꼭 받으라고. 자꾸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아들이 걱정되어서 자꾸 신고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다.

올래는 마치 손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며칠 전 나리
때 쓰러졌던 대나무가 반듯이 정렬되어 있었고, 그것이 큰 길에서 집까지 길 양측
으로 심겨 있었다. 흡사 귀한 손님을 맞으려는 듯한 인상이었다. 올래를 걷고 있는
사이 대나무가 하늘거리면서 마치 환영을 해주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런
모습을 보자 결심한대로 할머니를 나무랄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안개가
걷히듯이 집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할머니가 있었다. 마치 버드나무에 묶인 것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
뿔싸, 할머니가 목을 맸다. 버드나무 가지는 할머니를 애무하는 것처럼 할머니 몸
곳곳을 감싸고 있었다. 뱀처럼 몸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애인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따스하게 감싸고 있는 모양새였다. 마치 누에 꼬치 속 애
벌레처럼 잔가지가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멀리서 보니 흡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한 광경이었다. 아버지가 늘 강조했
던, 오래된 나무에 대해 삼가는 마음이 그 광경에 경의를 표하게 만들었다. 신비한
기운 때문인지 할머니 시체를 목격했는데도 그리 역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
무판으로 된 초가집 문을 열자 마루에 편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나는 뭔가에 이
끌린 듯이 편지를 집어 들었다.

우리집에 손님이 두 명 왔다 갈 것이네. 전화가 고장 나면 필시 자네가 여기에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네가 전에 말동무가 되어서 내 얘기를 들어줘 항상 고
맙게 생각하고 있었네. 하지만 자네보다 먼저 다른 손님이 이 집에 들를 것이야.
그 손님이 다녀간 후에 자네가 이 유서를 읽게 되겠지. 어떤가, 내가 몇 달 전부터
준비한 대나무 올래가 마음에 들던가. 귀한 손님이 오실 때에는 부정 타지 않도록
정성스레 질치기를 해야 하는 법이지.

영감이 죽었을 때 말일세, 제초제를 먹던 밤에 말일세, 나에게는 영감을 말릴 겨
를이 없었어. 결국은 그렇게 끝나게 되어 있었지. 하지만 평생 나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잊지 않겠다고 하더군.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네. 그 스트레스란 죽음보다
깊은 것이었어. 고향에 왔지만, 객지보다도 더 객지 같은 곳이었지. 허나 영감을
절망으로 내몰았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네. 영감 아버지가 저 아랫마을에서 유명한
서북청년이었다는 말도 아니었고, 돈을 꿔간 마을 사람 때문만도 아니었어.

그것은 두 아들놈 때문이었다네. 그게 화근이었어. 제주도에 내려올 때 말이야,
유산을 먼저 나눠준 게 화근이었어. 영감은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다 떼이고 마지
막으로 두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 막내놈이야 외국에 가 있으니 큰놈한테 걸었
지. 하지만,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큰아들놈이 아버지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지 않
는 거야. 돈이 없는 아버지를 아버지 취급을 하지 않더란 말이야. 그 때야 영감은
가슴을 치며 후회했지. 어쩌다가 평생 모은 재산을 미리 유산으로 나눠줘 이런 꼴
을 당하는지 말이야. 아들 두 놈은 제 아버지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어. 마을 이장
고씨가 나서서 초상을 치러주지 않았다면 그냥 남편 시체 옆에 살아야 할 형편이었
지.

이 집으로 이사 와서 말이야, 처음에는 큰 아들놈이 정신을 차렸는지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했어. 자기가 하지 않으면, 며느리를 시켜서라도 안부 전화를 걸곤 했
지. 제 아버지가 비명횡사하니까 정신을 차린 줄 알았어.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
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 그것들이, 나 죽었
는지 알아보려고 전화를 했던 거야. 저희들이야 서울에서 잘 살고 있으니까,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자꾸 걸렸던 거야. 그래서 이 집에 전화를 달아놓고,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전화국에 고장 신고를 했던 거야. 제가 와야 할 어머니 집을 자네 같
은 직원이 와서 확인을 하도록 말이야. 그야말로 현대판 고려장이 아닌가. 내가 그
주인공이 되다니 치욕 중에 치욕이었지. 결국 큰 아들놈의 의도대로 자네가 내 송
장을 발견하는 최초의 목격자가 되었군 그래. 정 없는 아들놈 같으니라구. 그런 놈
을 내가 키워놓고, 말년에 이런 멸시를 받으니 어디 살 수가 있겠는가. 이보다 더
큰 모욕이 어디 있겠는가.

곧 손님이 찾아올 거란 생각이 들더군. 내 옆에서 버드나무가 되어 나를 지켜주
던 영감도 곧 저승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던 모양이야. 아마도 남편이 나와 더 머물
고 싶어서 사정을 하긴 했지만 예정된 시간이 다 된 것 같더군. 그게 너무나 행복
한 시간이었어. 남편이 내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나를 떠나지 않고 말동무가 되어
주고, 나와의 약속을 지킨 동안 말이야. 이제 손님이 들를 시간이야. 그 사이에 올
래에 대나무를 깨끗하게 심어놓았지. 손님이 도착하면 잘좀 봐달라고 질치기를 했
지. 우리 두 부부가 같이 먼 길을 떠나는 동안 길안내를 해줄 손님이지 않은가. 그
게 예의가 아니겠는가. 허나 두 번째 손님인 자네한테는 몹쓸 짓을 하고 가네. 부
디 내 송장 좀 잘 치워주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겠네.

할머니의 유서는 여기까지였다. 이런 삶을 살 수도 있을까. 남을 나무라지 않는
할머니, 끝까지 삶의 격조를 잃지 않는 사모님 같은 할머니. 그 할머니를 생각하다
보니 대판 싸우고 멀리 떠나온 고향의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오년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고, 찾아가지도 않은 아버지가 생각났다. 평생 동안 땅만 보고 다니던
아버지였다. 차라리 부동산 업자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
무 쓸모도 없는 땅의 형세에 미쳐 남의 무덤 자리나 봐주고 막걸리를 얻어마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생각났다.

나는 할머니의 유서를 점퍼 안주머니에 깊숙이 넣고 중산간 마을을 내려왔다. 핸
드폰이 터지는 중산간 도로 가까이 가야 경찰서에 신고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또 길을 잃었다. 또다시 진돗개가 있는 캡스가 달린 별장에서 유턴을
하고 말았다. 마침 안개가 한라산으로부터 짙게 깔리고 있었다. 내가 가는 방향이
남쪽인지 한라산 방향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안개가 천지를 가득 채운 것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길을 잃을 것 같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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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정은영의 "홍주" 와 김도균의 "파리" 조중연의 "중산간에서 길을 잃다" 세 편을 놓고 최종 심의에 들어갔다.
문장력 구성 분량 등의 기본 조건을 갖춘 작품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예술작품의 심사는 심사위원들의 선정기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기도 하지만 공통점은 소설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 그 느낌이 무엇인가 하는 중점은 같다.
새해 첫날 발표되는 신인 작품일 경우 등장인물, 줄거리 등이 가장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교를 지나치게 부리거나 줄거리의 상황 설명에 치우치는 경우도 있는데, 급하게 써낸 듯한 작품도 있었다.
세 작품 중 고향에 안착하려는 황혼부부의 외로움과 외지인의 고적함을 소재로 한 조중연의 "중산간에서 길을 잃다"를 선에 넣는다. 이 작품도 잔가지를 조금 더 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세 작품 중 가장 무난하다는 평이었다.

<심사위원 정순희>

※ 편집국에서 심사평을 싣는 과정에서 오타로 인해 독자들에게 불편을 끼친점을 사과드립니다.
(시인작품=신인작품, 소제=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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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제주도는 내게 상상의 원천이다. 한라산의 구름은 통속적 불륜마냥 적나라한 이 사회에서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가르쳐준다. 각지에 산재돼 있는 소녀의 젖가슴 같은 오름은 각박한 삶 속에서 여유를 가지라고 충고한다. 이어도를 품고 있는 제주 바다는 상처를 파도로써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비극적인 제주 역사는 내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하는 잣대이며, 매서운 제주 바람은 삶의 비밀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발설하는 내부고발자이다. 투박하지만 정이 스며든 제주어는 배움의 기회를 주고 다양한 표현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늘 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평상심이 중요하다. 소설은 내게 희망을 준다. 좋은 친구처럼 내게 충고도 하고 때로는 채찍질도 가한다. 첫발을 뗀다. 디딜 발판을 제공해주신 영주신문사와 흠이 많은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애정 어린 눈길로 작품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한다.

주소 : 서귀포시 서홍동 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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