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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에 대해

-이성이-

설거지를 하다 그릇끼리 끼었다
하나가 등 뒤에서 껴안은 상태인데
흔들어도 보고 세제를 발라 살살 달래 봐도
도대체 떨어지지 않는다
오롯한 집중, 자세히 보니
신기할 정도로 꽉 붙어버렸다
서로 다른 그릇이 이렇게 부둥켜안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서로의 몸에 음각(陰刻)으로 새겨져 있었을 게다
오랫동안 서로를 찾았을 것이다
싱크대 모서리에 깨지지 않을 만큼 탁탁 쳐도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포개지는
불안조차 더 큰 결합으로 만들어버리는
숨찬 저들의 포옹
더 이상 그릇 구실을 못하게 된
결사적인 포옹이 눈부시다
꼭 낀 유리그릇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옆에 그대로 놔둔다
때로는 사랑만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다음날인가, 둘은 저절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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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오래전부터 ‘신춘문예용 시’들이 한국시의 흐름을 왜곡시킨다는 자조적인 지적들이 있어왔다. 고차원의 메타포를 구사한다는 미명으로 빚어지는 언어 유희적 다변, 감동이 결여된 난해성 등이 그것이다.
시는 시인의 영감(Inspiration) 속에 점지되었다가 만삭이 되어 탄생된다는 다분히 자연발생적 옛 시인들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역작을 만들겠다는 의욕만 앞서 의도적으로 쥐어짜듯이 시작업에 몰두하는 일은 시간낭비의 소지가 있다. 이는 연초의 신춘시들이 한국시 흐름의 풍향계가 된다는 면에서 결코 반가운 현상은 아닌 듯싶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선자가 주목했던 작품은 「지팡이의 별자리」 「저장고」 「호랑나비의 겨울」 「보네스공원에서」 「그녀의 봄」 「어떤 사랑에 대해」 「자반고등어를 생각하며」 등이었고, 이들 작품 또한 수준이 비슷비슷하고 신춘문예용 시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최후까지 겨룬 작품은 「지팡이의 별자리」(양영철)와 「어떤 사랑에 대해」(이성이)였다. 이 두 작품 중에 어느 것을 뽑아들어도 나름대로의 색깔과 목소리가 분명했다.
「지팡이의 별자리」는 ‘환한 대낮, 낡은 지팡이를 촉수처럼 뻗으며, 꿈꾸듯, 긴 별자리를 이으며 온다.’에서 보듯이, 작품구성이나 참신성은 돋보였으나, 뭔가 읽고 나면 감동의 울림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어떤 사랑에 대해」는 신춘시의 외투를 벗어버린 경쾌한 스텝의 작품이다. 누구나 일상에서 한번쯤은 체험했음직한 평범한 이야기, 그러나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읽게 하는 힘, 거기에 이성이의 성깔이 있었다.
특히 마지막 처리는 여지없이 우리의 허점을 찌르는 화룡점정이다. 함께 투고한 작품들의 수준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좋은 시인으로 탄생되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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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뜻밖의 당선 소식에 감당할 수 없는 전율을 느낍니다.
먼저 미흡한 저의 시를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평온한 삶 속에서 안주하기를 바라던 의식과는 달리 사랑에 대한 집착과 욕망으로 자다가도 벌컥벌컥 가슴이 열리고 우울해지는 제가 너무 신기했습니다.
지난날의 고통스런 숱한 그리움과 일상의 굴레에서 삶의 향기를 갈망하며 무언가 쏟아내고 싶어 시작한 시 쓰기 공부였습니다. 무턱대고 써내려간 시구들은 마음속의 그리움을 표현할 줄도 모르면서 억척스럽게 열정만 불태울 뿐이었습니다. 무수한 밤낮을 지새우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던 그 순간들이 눈에 선합니다.
눈앞에 닿을 것 만 같아 손을 펴 보면 휙 달아나고 또 잡으려고 달려가 보면 저 멀리 도망가 버리는 그 무엇, 그들을 위해 저의 시 쓰기 작업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아름답고 진실 된 인간의 향기를 채우며 한발 한발 나아갔으면 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갈 것이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자만하지 않고 열정적인 담금질을 계속 할 것입니다. 몇 백 년이 흐른 후에 읽어도 찡한 생의 에너지를 발할 수 있는 그런 시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리던 그 꿈을 종이 위에 표현하기까지는 너무나도 부족하기만 하던 저에게 시를 눈뜨게 해주시고 그 힘들고 멀기 만한 문학의 길을 참되게 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성기조 선생님과 오철수 선생님. 이분들을 만난 것은 제 인생의 노다지입니다. 덕분에 큰 기쁨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한 문우들, 특히 한국여성문예원 회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저를 아는 모든
끝으로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영주일보사측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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