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문별 당선자, 권행은(시), 김영순(시조), 이상렬(수필)
전국에서 총 1,722편(시 918, 시조 436, 수필 368) 응모

▲ 2013 영주신춘문예 당선자(왼쪽부터) 권행은(시), 김영순(시조), 이상렬(수필)씨
사람중심 인터넷신문 ‘일간제주’가 인터넷 신문사상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제6회 2013 영주신춘문예’ 당선작을 선정 발표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워 지는 영주신춘문예의 시부문 당선작은 권행은(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씨의 ‘목련꽃지다’가, 시조부문 당선작은 김영순(제주시 용담2동)씨의 ‘쌀점’이, 수필은 이상렬(대구시 동구 동호동)씨의 ‘이명耳鳴’이 결정됐다.

응모작은 총 1,722편(시 918편, 시조 436편, 수필 368편)이며, 심사위원은 시부문에 변종태․박몽구선생이, 시조부문은 이승은․문순자선생이, 수필은 오성자선생이 수고했다.

시상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추후 당선자들에게 개별적으로 공지될 예정이며, 시상식은 1월20일(일)오후 3시 제주시 연동 소재 삼해인관광호텔 대연회장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당선작가에게는 각각 100만원의 상금과 함께 인터넷신문 ‘일간제주’ 사장의 상패가 수여된다.

 

[시부문 당선작]

목련꽃 지다

-권행은-

저 집, 독거노인이 보이지 않는다

목련꽃 져 내리고
조문하듯 비가 지난다

꽃은 새의 깃털처럼 허공에 기대었을 때에도
신의 영역을 탐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인지
맨 땅에 누워 듣는 하늘의 말씀이 희다

툭, 떨어질 때
공기가 잠시 출렁했을 뿐
저 꽃은 첫 번째 고백부터
쪽방 밑에 버려진 마이너리티

뒤척이는 바람이
한 계절 백발이 성성하던 꽃의 외로움을 뒤집고
풍문처럼 누르스름하게
해묵은 발자국도 잠시 석양에 문지른다

한 때 속절없이 눈부시던 봄빛에
하얗게 저항하던 그녀의 몸짓을
그 누가 아름답다고 했을까

붓을 들어 마지막 유서를 쓰듯
혼신으로 써내려간 꽃의 낙화를 안다면
어둑어둑 밤의 담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내리는
한 장 어둠이 이불인
저 독거의 노추老醜를 함부로 밟지는 못할 것이다

[시 심사평]

삶의 진정한 피투체로서의 시

겨울 들어 내린 대설이 다음해에 풍년이 들 것을 예고하듯, 이번 영주신춘문예에 투고된 만만찮은 분량의 수작들을 접하면서 우리 시의 밝은 미래를 예감하게 된다. 전국 각지에서 골고루 분포된 투고자들은 이 신춘문예의 위상과 공신력을 말해주는 한편, 새삼 우리 사회에 시인 지망자들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 마음 든든하다.
이같이 전국에서 답지한 많은 응모작들 가운데서 당선작을 가려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열을 가려야 하는 신춘문예의 성격상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의 서기 위한 탄탄한 레토릭과 공감대를 넓게 하면서 주제를 이끌어가는 힘 등에 우선 주목하였다. 하지만 기교를 위한 기교나 작위적인 면이 지나친, 이른바 공모 제도에 병폐를 노정하고 있는 작품들에는 눈길을 빼앗기지 않는 데 유의하였다.
이번에 공모된 작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공모 제도에 횡행하는 낯선 소재 선택 및 지나치게 작위적인 레토릭 구사에 치중한 시편들이 적지 않았다. 시는 무엇보다 진정한 삶에 바탕하여야 하며, 지나침이 없이 시인이 염두에 둔 주제에 걸맞는 수사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경향에 편승하기보다 더욱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수사가 강구된 시편들을 찾는 데 주력하였다.
그 같은 고심의 결과 장고 끝에 손석만 씨의 「사월」과 권행은 씨의 「목련꽃 지다」가 선자들의 손에 끝까지 남게 되었다. 「사월」은 예전에는 풍성한 호수였으나 지금은 물이 말라버린 타클라마칸 사막을 둘러싼 드라마를 알레고리로 하여 우리네 삶에 내재된 삶의 삭막함과 그로부터 일탈하고픈 욕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눈썹 깜박거리는 모반을 꿈꾸는/ 이 모래먼지는 우주의 피부다’ 등의 구절을 통하여, 모래먼지로 상지되는 무소유의 정신이 현대를 새롭게 하리라는 사유를 펼쳐 보이고 있다.
「목련꽃 지다」의 경우에는 독거노인의 삶을 둘러싼 생의 비의를 ‘목련꽃’을 환유로 하여 풀어낸 작품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물질적 풍요에 역행하는 비인간화의 풍경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가운데 선명한 이미저리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또한 낯선 수사를 찾아내는 데 골몰하지 않고, 목련의 눈부신 개화와 쇠락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점에 눈에 띈다. ‘꽃은 새의 깃털처럼 하공에 기대었을 때에도/ 신의 영역을 탐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인지/ 맨땅에 누워 듣는 하늘의 말씀이 희다’는 대목에 보이듯, 비록 육신의 쇠락은 어쩔 수 없이 맞았지만 내면에 간직한 영혼은 깨끗하다는 사유가 잘 녹아 있다.
두 작품이 다 일장과 일단을 갖고 있다는 데 선자들은 동의하였다. 앞의 작품은 소재의 신선함과 잘 다져진 수사가 선뜻 눈길을 끄는 반면에, 추체험만에 바탕하여 구축한 사상의 전개와 다소 작위적인 수사가 마음에 걸렸다. 권행은 씨의 작품은 명징한 이미저리의 구사를 바탕으로 한 수사와 공감대가 넓은 주제의 구현이 강점이지만, 다소 다양하지 못한 시상의 전개와 결구의 미진함이 엿보였다. 선자들은 두 사람의 여타 투고 작품들을 함께 검토한 끝에 권행은 씨의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견지하고 있으며, 흔히 신춘문예 응모작들이 노출하기 쉬운 상투적인 골격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아 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합의하였다.
결선에서 함께 논의된 몇몇 작품들도 선자들의 손에서 놓기가 아까웠다. 정순 씨의 「빈 통장 같은 오후」는 디지털 세상이 노출하고 있는 비인간화와 과소비의 문제를 실감있게 다루고 있으나 좀더 치밀한 수사의 강구가 아쉬웠다. 주대생 씨의 「태안 검은 얼굴 앞에서」는 서해 오염 문제를 소재로 삼아 시상을 전개하고 있지만, 보다 폭넓은 환기력과 적절한 수사가 요구되었다. 김창호 씨의 「감기」는 신선한 이미저리의 처리가 일품이지만 소재의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주제의 모호함이 지적되었다.
이상 결선에서 논의된 작품들은 당장 기성 시단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역량을 보여주어 선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분발한다면 어느 지면을 통해서든 우리 시단의 일원이 될 역량을 지닌 이들이니만큼 더욱 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기 바란다. 아울러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당선자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더욱 정진하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시단의 일가(一家)를 이루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 변종태(시인), 박몽구(시인․문학평론가, 글)

     
 
[당선소감]
 

권행은

▲ 권행은씨(시 부문 당선자)
원고를 보내던 그날은 하늘 보자기가 풀린 듯 함박눈이 쏟아졌습니다. 하늘도 무언가 쏟아내고 싶은 말이 있었을까요? 조곤조곤 하늘의 하얀 말씀을 들으며 돌아오는 길이 미끄럽지만은 않았습니다. 올해 신춘은 어쩌다 보니 주요 일간지의 마감일을 놓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동인들 덕에 마감일 전날에야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당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번에는 눈발이 쌀밥처럼 부풀다가 한 줄 물이 되어 주루룩 흐릅니다. 모자라는 시를 선하여 빛을 보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손 모아 감사를 드립니다.
시를 포기하고 싶을 때 말없이 응원해준 남편과 아이들, 늘 웃음으로 격려해주던 친척들과 친구들, 시의 열정으로 한 식구가 된 아바동인들, 그리고 뒤늦게 시의 길로 인도해주신 문효치 선생님과 박남희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납니다. 시는 저에게 길을 밝히는 별이자 빛입니다. 빛을 잃은 별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아 겨울 숲의 나무들에 매답니다. 제 우듬지의 빙점을 통과하며 아름다운 눈꽃 세상을 만드는 나무들, 그 신비한 찰라 속에서 나무들의 인내를 배우며 낮은 걸음으로 시를 통하여 세상과 만나고 싶습니다.

*1962년 전남 광양 출생
2006년 미네르바 신인상 시
* 주소 :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30-33 대림아파트 104동1403호
* 전화번호 : 02)6259-8406 // 010-3253-9250
* 메일주소 : upinin@hanmail.net

 

 

[시조부문 당선작]

쌀점

-김영순-

해마다 봄빛 돌면 통과의례 치르듯
식구들 손 없는 날 그것도 짝수 날에
남몰래 저녁 어스름 불빛처럼 다녀간다

어머니는 무당을 나그네라 부른다
부엌에는 조왕신 애들 방엔 삼승 할망
달랠 신 또 하나 있네
능청스레 뜨는 달

“인정 걸라, 인정 걸라”
요령소리 댓잎소리
내 사랑 고백 같은 심방사설 잦아들면
놋쇠 빛 산판에 걸린 식솔들 신년 운수

공기 놀듯 쌀 몇 방울 휙 뿌렸다 잡아챈다
홀수는 내던지고 짝수만 받아 삼킨다
입춘이 갓 지난 봄빛
씹지 않고 삼킨다

 

[시조 심사평]

정서의 미학적 성취와 해조(諧調)

인터넷신문 2013영주신춘문예, 올해 시조부문에는 총 436편이 응모했다. 대선을 앞두고 술렁이는 시기였음에도 우리 민족 문학을 지향하는 푸른 물결에 먼저 박수를 보낸다.
해를 거듭할수록 응모작의 수준이 높아져서 우열을 가려 꼲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우선 선자들은 집중과 성찰, 새로운 호흡과 기지의 언어 쪽에 마음을 기울였음을 밝힌다. 21세기 현대시조의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텍스트북을 보는 것 같았던, 김수환의「개밥그릇」,김영순의「쌀점」, 김완수의「우도 기행」,이영신의「헌 책처럼 허난설헌을 읽다」,정옥선의「감또개」가 최종심에 올랐다.
「개밥그릇」은 시적 형상화와 긴장감이 돋보이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있었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식상함이 흠이었다. 「우도 기행」과 「감또개」는 발상은 신선했으나 신인다운 패기가 약했고, 「헌 책처럼 허난설헌을 읽다」는 시공을 아우르는 품에 비해 군데군데 관념어와 장과 장의 연결이 미흡했다.
함께 보낸 작품들의 무게를 따져 읽으며 김영순의 「쌀점」을 당선작으로 민다.
「쌀점」은 제주의 샤머니즘에 닿아있는 정서를 미학적 성취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남몰래 저녁 어스름 불빛처럼 다녀’가는 나그네가 그 해의 운수를 점쳐주는 무당이다. 가족들이 손 없는 날을 택하여 ‘홀수는 내던지고 짝수만’ 취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람인(人)자를 이루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는 생각이다. ‘플라시보 효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가짜 약으로도 치유를 경험한다는 것. 약보다는 마음이 중요하고 마음보다는 간절하고 굳은 믿음이 결국은 기적을 이뤄내듯, ‘입춘이 갓 지난 봄빛 씹지 않고’ 받아 삼킨 「쌀점」이 신년 운수뿐만 아니라 그의 문운까지 활짝 열어줄 것을 믿는다.
마침 심사당일 제주엔 그 귀하다는 눈이 펑펑 내려주었다. 마치 쌀점이라도 치듯 말이다. 2013년 점괘! 당선자는 물론 함께 거론된 네 분의 가슴에도 행운의 복주머니가 하나씩 들어앉을 거라는...
·심사위원/이승은. 문순자

[당선 소감]

김영순

▲ 김영순씨(시조 부문 당선자)
‘너를 걸어라. 무모하라. 끝까지 가라.’
내 노트북을 열면 이런 글귀가 보입니다.

시작이 좀 늦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좋은 시들을 많이 읽고 필사하고, 열심히 하고자 나름의 몸부림을 쳤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않고 나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잡다한 계산은 미루고, 글을 쓸 만한 잠재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그냥 가보기로 했습니다. 무작정 시를 붙잡았습니다.
막상 당선소식을 듣는 순간 창밖엔 하얀 눈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농사도 눈이 많이 오면 그 이듬해에는 풍년이라는데, 내 속에 숨겨져 있던 이랑 이랑을 갈아엎어 많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단 몇 사람의 아픈 가슴이라도 위로해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내게 2012년은 유난히 힘든 해였습니다. 좋은 일들이 많았다면 이렇게 몰두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시조가 있어서, ‘정드리’가 있어서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쉼 없는 자극으로 나를 깨어있게 만든 회원들께 감사하고, 그래도 좋은 결과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힘든 생의 한 고비를 슬기롭게 넘기고 부쩍 자란 두 딸 은경, 은교, 그리고 아들 재환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전합니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봐준 남편과 어머니께도 감사드립니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강한 것’이라 했습니다. 미흡한 제 작품을 올려주신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시조’라는 마라톤의 출발선에 세워 주셨으니 끝까지 완주해볼 참입니다. 기필코 살아남겠습니다.

* 제주 의귀리 출생
2011 제주신인문학상 당선
정드리문학회 회원
현재 학원 운영
* 주소 : 제주시 용담2동 620-2 4층
* 전화번호 : 064)743-9662 // 010-2430-3443
* 메일주소 : didimdol-1004@hanmail.net

[수필부문 당선작]

이명耳鳴

-이상렬-

남겨진 풍경마다 어둠이 내렸다. 또 밤이다. 부산하게 오가던 골목에 인기척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흐릿한 형체로 남겨질 무렵에서야 서재로 돌아왔다. 나의 지문을 화석처럼 안고 있는 빼곡한 책장의 책들, 수많은 생각과 번뇌를 기억의 저편으로 잠재우게 했던 책상, 가장 가까이에서 체온을 나누며 몸을 의지한 의자, 모든 풍경이 오랫동안 묵혀 두어 익숙함에도 오늘따라 낯설어 보인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책상 위에 모은다.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오늘과 내일이 교차된다. 생각의 덩어리가 커지고 한없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때론 마음의 향방이 거미줄처럼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혼돈스러워질 때면 조용히 눈을 감는다.
현실과 멀어져 가는 이상들은 꿈결인지 생각인지도 모를 무아無我의 세상으로 나를 몰고 간다. 빛과 파장, 소리와 형태, 느낌과 흐름이 함께 공존하는 곳.
윙-, 윙-, 윙-, 삐---, 한 줄 소리가 바늘처럼 뇌리를 뚫고 지나간다. 누군가가 라디오 주파수를 돌려대며 이 밤을 지새울 작정인가 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소리를 피해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옮긴다.
숲이다. 생명이 움트기 위해 잠시 웅크리고 있는 시간은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둡다. 고요하다.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는 숲의 적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길 위로 천천히 발을 옮겨 놓는다. 풀들이 몸에 부딪힌다. 조용하면 더 뚜렷해지는 것이 소리일까. 스윽-, 신경을 곤두세운 소리들이 나를 올려다본다. 지금 나는 불청객처럼 흘러들어 숲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다. 찌르르-, 찌르레기가 울고, 매앰 맴-, 끼르끼르-, 매미, 귀뚜라미가 사방에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둘러보아도 그들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땅이 울렁이고 사방이 흔들린다. 온 숲을 밀어붙이는 굴착기 소리, 찌익찌익- 쇠를 갈아내는 잔인한 소리들이 나를 공격한다.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아도 소용이 없다. 그들은 나를 용서하질 않는다. 모두가 나를 향해 원망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을 따라 얼마나 몸부림을 쳤던 걸까. 숨통을 죄어오던 숲이 멀리 있음을 직감으로 알았다. 여전히 사방은 실루엣으로만 형체를 내보이고 있다. 어디선가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난다. 뻗으면 손에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물결이 서 있는 듯하다. 차르르-, 수면은 잔잔했다. 바다의 놀음에 심취되어 몇 발자국 옮겨 놓는다. 차르르르-, 자갈을 밟는 발자국 소리에 파도가 나의 침입을 눈치 챈 듯했다. 쏴아-, 나를 집어삼킬 듯 고개를 쳐들고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높이 일어선 파도는 위협이라도 하듯 달려와 바위에 장쾌히 부서지며 제 형체를 드러낸다.
자리에 누웠지만 소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루 중 마지막 고비다. 깊은 밤이면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지쳐 몸은 바닥으로 스르르 녹아든다. 소리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다.
첫 소리의 여행이 시작된 것은 스무 해 전이었다. 어느 날 귓가에 생면부지의 수상한 객이 찾아왔다. 처음엔 그저 조금 거슬릴 뿐 고통은 아니었다. 시간이 가면 잠잠해지리라 믿었지만 서서히 마수를 뻗어 온갖 소리로 제 본색을 드러냈다. 잠시 잠잠하다 싶다가도 몸뚱이가 지치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정신을 교란시킨다. 그럴 때마다 현기증이 일어 바닥에 주저앉곤 했다. 불면의 날이 지속되면 될수록 내 영혼은 소리로부터 유린당하고 있었다.
얼마를 더 견디면 오늘이 지난단 말인가. 오늘만 참으면 내일이 올까. 동 트기가 얼마나 힘에 겨운가를 이명을 지독하게 앓아본 사람은 알리라. 새벽을 깨우며 일어날 때, 이제 제발 멈추길 바라는 그 희미한 기대가 깨어지는 순간, 오죽했으면 연명延命의 꿈마저 풀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해보았으랴.
세상의 소리들은 물속에서 들려오는 바깥의 소리처럼 웅웅 거렸다. 바닥까지 가라앉은 마음은 혼탁해져서 표정마저 일그러뜨렸다. 진저리를 치며 돌아서도 메아리치는 건 매한가지였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소리들은 삶의 흐름을 건드리며 나를 조롱하기까지 했다. 세상의 소리가 자유자재로 나부대는 낮에는 그나마 잊을 수 있다지만, 밤은 쇠사슬에 묶인 듯 고통의 세계로 끌려가고 있었다. 칭칭 감고 있는 지긋지긋한 소리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산 능선 위에 낮달이 희멀겋게 걸려 있던 어느 가을, 밤새 소리에 난타 당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초점 없는 눈, 맛을 잃은 입, 세상 어디에서도 대접 받지 못할 야윈 몸으로 버스에 올랐다.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아양교의 물결은 단정했다. 잠시 고요에 빠져있을 때 다시금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 요란했다.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목으로 넘어가는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힘없이 무너지는 한 남자가 차창 속에 있었다. 결핵을 앓아 핏기 없고, 퀭한 두 눈과 광대뼈만이 덩그러니 자리 잡아 얼굴임을 말해주던 남자, 깡마른 체구에 폐 구석구석까지 균들에게 내어준 그 남자는 어쩌면 물결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고통도 잠재우는 묘약이었을까. 소리와 동거하는 스무 해 동안 고목이 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 옹이 여럿 품고서 중년의 고개를 넘어가고 있음이 참 다행스럽다.
소리는 단지 소리일 뿐이다. 마치 실체 없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은 것, 그것은 허상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숱하게 나를 위협했다지만, 따지고 보면 단 한 번도 나를 문밖으로 내몰지 못했다. 내 안에서 만든 소리는 그럴 힘이 없다. 안에서는 소리의 폭군이라지만 바깥에서는 맥을 못 춘다. 그래서 소리는 무형의 포효다. 나를 찢고 파괴할 발톱도 가지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간 내 스스로 자신을 얽어매며, 가두며 더 크게 고통의 소굴로 내몬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도 오랜 세월 같이 살다 보면 벗이 되는 것인가. 이제 나는 이명에 대한 익숙하고도, 자연스러운 생존법을 터득했다. 처음엔 금은방의 저울처럼 미세한 소리의 무게에도 휘청거렸으나, 이제는 넉살좋고 인심 후덕한 재래시장의 방앗간 저울처럼 큰 보릿자루 서너 개쯤 올려놓아도 거뜬히 소화해내는 여유가 생겼다. 이명은 나를 산 채로 굴복시키기 위한 덫이 아니라, 어쩌면 긴 생의 여정을 함께 걸으며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동반자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이명을 대하는 내 뱃심이 제법 두둑해졌다. 소리를 삼 시 세 끼로 먹고, 내 걸음의 디딤돌로 여기며 인생의 강물을 저벅저벅 걸어 여기까지 살아서 다다랐다. 우리네 삶이 언제 고통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노력하여 바꾸지 못한다면 받아들이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옳으리라. 뼈에 사무치는 아픔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것에 대한 건강한 해석이 아닐까.
그랬다. 이명은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는 장벽이 아니었다. 이명耳鳴은 이명異鳴을 듣게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내 귀의 소음이 커질수록 상대의 세밀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리라. 온갖 고민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의 소리가 이윽고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얼마나 아픔이 서려있는지, 무거운 인생의 짐이 얹혀 욱신거리는지 이명耳鳴을 앓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사르륵 사륵, 소리가 먼저 일어나 여명을 밝힌다. 오늘도 긴 소리의 여행길에 오른다. 이젠 제법 여행을 즐길 배낭 하나쯤 거뜬히 꾸려 나선다. 숲을 걸으며 만나게 될 바람, 물, 새, 매미, 귀뚜라미들,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의 속삭임,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귀 기울이고 들어볼 참이다. 때로는 나의 이야기도 그들에게 들려 줘 볼까 한다. 모든 것이 허상이어도 좋다.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소리들이 내 안에 기거하는 동안 나는 더 넓어지고, 더 여물어지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아프지만 깊은, 쓸쓸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여행을.

[수필 심사평]

응모작 중 대다수가 먼 곳에서 바다를 건너왔다는 점이 조금 놀라웠다. 각지에서 도착한 원고들이 섬을 향해 펄럭이는 배의 돛처럼 느껴졌다. 항해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섬의 이미지가 그들에게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장고 끝에 올해의 당선작을 ‘이명’으로 정했다. ‘날라리’, ‘이끼’, ‘뼈’, ‘손’ 등을 두고 여러 번 검토했다. 글을 엮는 수준에서는 ‘이명’을 능가하는 면이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이명’은 앞부분에서 쉽게 몰입을 하지 못하는 점 때문에 과감하게 한 두 단락을 희생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반복되는 내면의 스케치도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러나 감동의 울림이 컸다.
마치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에서처럼 글 속의 남자는 귀를 감싼 채 혼자 절규하고 있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라! 마침내 그는 공포의 난간을 걸어 나간다. “이명(耳鳴)은 이명(異鳴)을 듣게 한다.”는 것을 체득하였고 바야흐로 자신을 괴롭히던 소리의 숲에서 바람, 물, 새, 귀뚜라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려보리라는 독백을 하기에 이른다.
두드러지는 객관적 상징물이나 에피소드 없이 우직하게 ‘이명’을 쓴 반면에 그의 다른 글 ‘본심’에서는 여러 작법을 활용하여 식상하기 쉬운 부성애라는 주제를 잘 그려냈다. 그런 점이 앞으로의 탁마를 통해 더욱 깊은 감동을 주는 글을 쓰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끝으로 전국각지에서 이 섬을 향해 염원의 돛을 올렸던 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언젠가는 자유의 바다를 건너 저마다의 그리운 섬에 닿길 기원한다.
·오성자/수필가

[당선소감]

이상렬

▲ 이상렬씨(수필 부문 당선자)
한때는 섣부르게 이기려는 시늉을 하면서 아등바등 산적도 있었다. 걸어온 길 되돌아보니 자욱한 눈물천지다. 참담한 시절 부끄러운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 것이 수필이다. 수필은 지면서 살아도 행복한 법을 가르쳐 주었다. 가끔씩 그 도가 넘을 때 있다. 이제는 무엇을 해도, 어디에 있어도 꼴등이다. 나의 자리는 어느 덧 아득한 끄트머리가 되고 말았다. 몸에 밴, 지는 습성 때문에 이제는 뒷자리가 편하고 바닥이 푸근해졌다. 이런 내가 상賞을 받았다. 지금 나는 몹시도 어질어질하다.
큰 감사를 드리고 싶다. 대구 MBC 수필반에서 맑은 삶, 혼신의 글쓰기를 가르치시는 곽흥렬 선생님께, 함께 동행을 해 준 숨겨진 옥석들에게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사드리고 싶다.
이 행복한 기분에 취해, 나와 같이 소리의 전쟁을 치르고 사는 사람들과 휘파람 휙휙 불며 살련다. 귀가 있어도 들을 귀 없는 꽉 막힌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들으며, 시끄러워도 천근의 고요를 꿈꾸며 가슴 펴고 살고 싶다. 새해 아침, 햇살이 눈부셔서 삶이 이렇게 맛있는데 귓속 작은 소리 돋아나는 것이 뭐가 대수겠는가.

* 경북 경산 자인(1967년 생)
2012년 대구일보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
2012년 보훈문예대전 수필 부문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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