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119센터 소방사 박형준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골목 입구를 막은 차량 때문에 진입할 수 없었습니다.”

▲ ⓒ일간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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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소방관들의 훈련 현장에서 구조대원이 남긴 이 말은, 제도의 존재와 현실의 괴리를 상징합니다.

제주시 연동·노형동, 서귀포시 동홍동 등 주거 밀집지역의 골목길은 도로 폭이 3m 이하인 곳이 많고, 주차 공간 부족 문제로 인해 소방차 진입이 곤란한 지역이 수십 곳에 이릅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소방공무원에게 주어진 법적 권한이 바로 「소방기본법」 제25조의 ‘강제처분’ 조항입니다. 화재 진압이나 구조·구급 활동을 위해 필요할 경우, 현장의 장애물이나 차량을 이동, 제거 또는 파괴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적 장치입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위와 같은 제도가 쉽게 집행되지 않습니다. 차주와의 연락을 우선하거나, 다른 우회로를 찾는 등, 저희 소방관들은 늘 차선의 길을 선택해왔습니다. 실제로 제주 지역에서는 강제처분이 한 차례도 집행된 적이 없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소방관들이 민원이나 법적 분쟁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보도하고, 많은 국민들 또한 “그럴 거면 차라리 부수고 들어가지”라는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소방관들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강제처분은 최후의 수단일 수는 있어도, 첫 번째 선택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소방기본법」 제1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이 법은 화재, 재난·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며 복리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소방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비파괴적 방법부터 먼저 고려하는 것이 우리의 윤리이자 책임입니다.

우리는 파괴보다 안전을 선택하고, 대립보다 설득을 택합니다. 현장에서의 무력보다, 시민분들의 ‘양보’가 먼저 작동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저희의 바람은 단순히 소방관들의 통로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상생을 위하여 불법 주·정차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작은 실천이, 소방차의 길이 되고, 더 나아가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상생의 길이 됩니다.

강제처분이 필요 없는 제주, 그 시작은 바로 여러분들의 작은 실천입니다. 소방차가 멈추지 않도록, 함께 길을 열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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