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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카페

-김 대 봉-

한낮에 도두동* 먹거리가 철썩거리며 나를 찾네
자판기 커피만을 생각하다 탁자가 있는 찻집을 보고
구름 속으로 돌아가고 만 댕그런 햇살
간직한 차일遮日을 거두고 나면
공중이 어딘지 몰라, 너는 알아
내 귀가 화알짝 벌렁하네
어디선가 파도를 먹은 두더지
구들장과 천장을 맴도는 그런 카페에서
어머니의 삶을 운구할 허방을 찾고 있네
두 잔 같은 한 잔의 차가 물고기 비늘처럼 흐물거리네
탁자 위 무크지mook誌, 등자죽이 축축하게 오르고
해안도로 고불고불 사랑초草가 무럭무럭 자라네
드나드는 경고등에 실려 온 가을의 행간에
구름을 넣을 수 있는 자간이 있는 걸까
욕창을 사위하는 식탐에게 장침을 쑤셔 보지만, 쓰읍
구름이 한 잠자는 사이 나는 차디차게 휘어지네
꽁무니부터 잘려 나가는 찻잔 속 자연산 건덕지
갈매기 울음이 목 좋은 길목의 호래자식처럼 울려 퍼지고
밀물이 달아나기 전, 한 잔의 시간은 모금모금 나가네
벗집**에서 반숙되어 튕겨져 나가는 통통배 가로막 부위로
새참 같은 내 오래된 가요가 흘러나오고.

* 도두동 : 제주시 해안에 위치한 행정동
** 벗집 : 소금막

<심사평>

해마다 가을 무렵이면 문청들이 앓게 되는 신춘병. 그 중의 한 페이지의 마침표를 찍는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중앙과 지방의 구분 없이 수많은 응모자들의 작품이 쇄도한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아직 우리의 시가 죽을 때가 되지는 않았나 보다 하는 안도감이다.

올해 3회째를 맞이하는 영주 신춘문예 시 부문에도 인터넷 신문이라는 점과 지방지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236편의 작품이 응모 되어 지난해보다 양적으로 많은 응모작품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그 수준에 있어서는 일정한 수준에 오른 작품들이 많아서 응모작품들을 읽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노동이었다.

우선 예심과 본심을 구분하지 않고, 심사위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작품을 돌려 읽었다. 그 중에서 홍희자 씨의 「치매랑 놀기․1」외 2편, 주명숙 씨의 「오래된 것들을 위한 기억」 외 2편, 김대봉 씨의 「따뜻한 무대」 외 2편의 작품들을 추려내었다.

우선 홍희자 씨의 시편들은 연작시의 형태였는데, 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시상을 언어화하는 솜씨가 상당한 훈련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연작시라는 양식을 좀 더 깊이 이해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차암 슬프다’처럼 한두 군데 감정의 직설적 표현이 거슬려 시 전체를 읽는 맛을 떨어뜨리는 것은 흠이었다.

주명숙 씨의 응모작들은 김대봉 씨의 작품들과 함께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할지를 두고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작품들이다. 이 역시 상당한 습작의 이력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이제는 시의 장점이 아닌, 단점을 찾아내야만 하는 고통의 순간이었다. 우선 주명숙 씨의 작품에서는 행을 가르는 기준이 모호하여 행갈이가 불안한 것이 우선 지적되었다. 물론 의도적인 장치로 양행걸침의 기법이라고 볼 수도 있었으나, 그 효과가 선명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안채와 사랑채를 돌아 행랑채까지 돌아나올/동안 혓바닥에 얹힌 마당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의 경우처럼 ‘동안’이라는 단어가 굳이 아래 행으로 건너올 이유가 없지 않았느냐 하는 말이다. 또한 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이미지가 약한 것도 흠결로 지적되었다. ‘엄마가 운다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일이 있을까’처럼 서술형의 문장들이 시적 긴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대봉 씨의 작품들에도 트집(?)을 잡을 만한 점들이 있었다. 「따뜻한 무대」는 산문시인데, 시적인 리듬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 약점이었고, 문장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 시적인 긴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시마다 일일이 각주를 넣어 시를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을 했다. 그만큼 생경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얘기가 될 터인데, 이는 시 안에서 녹여 시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리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결국 장고(長考) 끝에 김대봉 씨의 「무인카페」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한가한 해변의 카페를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잔잔한 탐색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적 긴장이나 이미지의 창출 등에 있어서 탄탄한 구성력을 갖고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 당선작으로 합의를 하였다.

응모한 모든 분들에게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당선된 김대봉 씨에게 축하와 더불어 좋은 작품으로 독자와 문단을 즐겁게 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심사위원 변종태, 강수>

<당선소감>

 

▲ 김대봉 당선자

비가 오다 개다, 독감에 걸린 것처럼 심하게 기침을 하던 날
시만 쓰겠다고 별렀더니 알량한 명예욕, 쉽게 털어내지 못하는 채무, 아무렇게나 버려진 가족의 모습들이 시시각각으로 내 시야 반대편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순간 집요하게 꽁무니를 무는 무엇엔가 쫒기듯 섬으로 달아나야 했었지요. 그래야 마음이 편했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렇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운명의 아킬레스 건은 전생에 지은 무슨 업보라도 된 것처럼 아니 그 보다도 더 모순되게 내 주변을 가까이서 맴 돌았어요. 그래서 신께 용서 아닌 용서를 빌었어요. 진정성을 가지고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말이죠. 그러자 오히려 슬픔과 고통이 내 몸 밖을 떠나지 못하고 몸 안에서 마냥 즐기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다른 방법을 생각했죠. 일반 양파보다 몇 십배 커다랗고 질긴 양파가 있었지만 다 벗겨 내기로 마음 먹었고 일주일 마다 한 껍질씩 오일장 쓰레기를 치우는 심정으로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지요. 결국, 2010년을 맞이하기 전까지 나는 마지막 남은 양파의 껍질과 맞닥뜨렸고, 그 순간 매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네요. 죄인에서 조금 벗어난 기분이었습니다

갑작스런 당선 소식에 너무 기쁘고 떨립니다.

주검을 털어내고자 했던 세월, 올 한 해 행복이라는 단어를 무시로 넘겨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졸작拙作에 대해 어여삐 봐주셨던 언론사 관계자님, 심사위원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아내, 호흡하고 있는 동안 함께 한 방을 쓰기로 한 시심詩心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시를 바라보고 시만 쓰겠다고 한 약속, 이제 지킬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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