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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수첩 2

-강경훈-

한 달 넘는 수색에도 못 찾던 그 소녀를

개가 찾아냈다. 수확 끝난 과수원에서

개만도 못한 이 세상, 내가 내게 침 뱉는다.

용서하라, 이 땅의 남자들을 용서하라.

얼음장 같은 땅을 깨고 나온 복수초

서귀포 노란 봄날을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심사평>

흔히들 시조를 민족시․겨레시라고들 한다.

다양한 우리민족의 정서를 절제된 언어의 묘미로 담아낼 수 있는 운율적 구조(형식)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시조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전통적 특성을 어떻게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며 계승 발전 시켜 나가느냐 하는데 있다 하겠다.

본심에 올라온 다섯 편의 시조 즉, 단풍책(김형태), 겨울 속초에서(김화섭), 학교 공사장을 지나며(나동광), 제주 물영아리오름 습지(이우식), 소방수첩․2(강경훈)의 작품은 저마다 신인다운 패기와 실험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 땅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징하지가 않았다. 읽고 나서 무릎을 친다거나 진한 감동으로 코끝이 찡해지는 그런 작품들이 드물다는 뜻이다.

‘겨울 속초에서’와 ‘학교 공사장을 지나며’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지만, 완성도가 약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도 없는 것이 아쉬웠다.

‘제주 물영아리 습지’는 생태 환경적인 측면을 다루고자 했지만, 시상 전개가산만한 게 흠이었다.

‘단풍책’은 다소 동시풍이고 4수를 한 편의 시로 끌고 가는 솜씨도 결코 녹록치 않다. 특히 선자는 넷째 수에 주목했다.

‘달랑 남은 마지막 단원마저/읽혀져 나가고 책의 올곧은 뼈대와 영혼이 오롯할 때까지/ 가을은/ 쉬지도 않고 읽고 또 읽어낸다’는 표현들은 돋보인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앞서 지적한 대로 메시지의 명징성의 결여가 문제였다.

결국 마지막 남은 「소방수첩․2」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무릎을 칠 정도는 아니지만, 읽고 나면 뭔가 코끝이 찡해지는 메시지가 다가온다.

아마 응모자는 소방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인 것 같다. 제목이 암시하듯, 현장에 출동해서 사건 사고를 마무리 하고 그것을 일기 쓰듯 표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가 보낸 소방수첩 연작시 여러 편으로 입증된다. 직업이 소방관이라면 이런 작업도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축하하면서 대성을 빈다.

<심사위원 정인수>

<당선소감>

 

▲강경훈씨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은 용눈이 오름에서 ‘이어도를 봤다’고 했다.
나는 용눈이 오름을 오를 때마다 그가 봤다는 용눈이 오름이 어느 쪽 방향일까 하는 1차원적 생각만 했다. 둘러봐도 허허벌판에 오름들만 몇 개 솟았을 뿐인 것을.

그 오름들 중에서 유난히 우뚝한 오름이 있었다. 언제 한 번 그 오름에 가 봐야 되겠다는 생각만 늘 되뇌이고 있었다.
오늘 마침내 그 오름에 올랐다. 당선통보를 받은 시각, 왜 내가 그곳으로 갔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오름이 바로 다랑쉬다.

사실 다랑쉬는 품새도 좋고, 높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오늘에야 이 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전환점에 좋은 인연이 되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직장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어느 선배가 말했다.
‘소방관에게 포기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포기라는 건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눈에도 서귀포의 어느 봄날은 분명 슬픔과 절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냥 있기엔 세상을 향해 내리쬐던 봄볕이 너무도 따뜻했었다.
오늘은 이 곳에 와 내년 봄 얼음새꽃이 환하게 피어나기를 기도해 본다.

다랑쉬 오름에 함께 올라주신 정드리 가족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하겠다.
추호도 흐트러짐 없이 갈 작정이다.

부족한 글을 뽑아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그리고 뉴스제주신문사에 큰절을 올린다.
이쯤에서 내 가족들에게도 ‘사랑한다’는 귓속말을 전해야겠다.

▲연락처: 017-699-1882

1975년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출생
‘정드리사람들’ 회원
제주소방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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