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29

퇴근길

-강현수-

직장에서 헐값에 내 하루를 되팔았다.
그림자로 다녀가는 서귀포 그 뒷골목
핸드폰 아예 꺼 놓고 돌고 도는 퇴근길

아스피린 한 알로 한 생각을 또 눅이고
간신히 불을 끄는 선인장을 바라본다.
내게도 가시가 있어, 그냥 날 선 가시가 있어

-----------------------------------------------------------

심사평

일반 문예지의 신인문학상과 <신춘문예>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인가?
프로신인 등용문이라는 면에서는 같다.
하지만, 새해 첫날 모든 문학 지망생들의 이목이 집중된다는 면에서 현대시조의 전범(典範)이 되기도 한다.
그런 만큼 프로신인의 가슴에 내장돼 있는 시의 광맥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는 일이 당선의 척도가 될 것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어울려 사는 법」 「모슬포 송악산」 「소방수첩」 「겨울바다」 「세한도가 나를 보다」 「퇴근길」 등이었고 프로신인으로서의 기질도 엿보였다.
그러나 좀 어설프지만 거침없는 자신의 소리 즉, 신인다운 패기가 아쉬웠다.
결국 선자는 「모슬포 송악산」(이창선)과 「퇴근길」(강현수)을 놓고 한참 저울질했다.
「모슬포 송악산」은 모슬포 송악산에 뚫려 있는 진지동굴을 ‘숭숭 구멍 뚫린 벌레 먹은 밤’으로 형상화 시키고 ‘잘 익은 송악산 가을, 펑 터진 분화구’를 보는 눈이 예리했지만,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이 그의 역량을 가늠하기엔 미흡한 점이 있었다.
「퇴근길」은 현대인들의 공허한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의 냄새에서 감동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직장에서 헐값에 내 하루를 되팔았다’는 대목과 ‘아스피린 한 알로 한 생각을 또 눅이’는 작가의 건강한 시선에 긍정이 간다.
시조의 제한된 3장6구의 짧은 형식에 촌철살인과 같은 절제되고 밀도 있는 시어로 구성한다는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오히려 자유분방한 표현으로 시조의 묘미를 한껏 살려준 솜씨가 돋보인다. 대성을 빈다.
<심사위원 정인수>

---------------------------------------------------------------------

 

당선소감

“새의 내장을 통과하는 그 씨앗처럼”

휴대폰이 울렸고, 순간 내 전두엽을 의심했다. 미숙한 나의 시어가 거미줄에 툭 걸리다니……

교래리 1112번 중산간 도로를 따라 한라산 동남자락으로 가다보면 초록의 데칼코마니 삼나무 길이 나온다. 불 한번 터진 그 자리에 물집처럼 앉은 산정호수가 바로 물찻오름이다. 제주 들녘의 368개 오름 중에서 정상 분화구에 물이 있어 아름다운 호수…… 그곳을 지난 11월에 다녀왔다.
오름 입구에서 거미줄에 걸린 단풍잎을 보았다. 15년 동안 가슴속에 묻어둔 오래된 사표를 떠올렸고, 자연스럽게 「퇴근길」이란 작품이 내게로 왔다.

난 가끔 나의 시가 어디쯤 와 있는지 생각을 해 본다. 따라비오름에 수줍게 피어있는 애기물매화도 처음부터 그 자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필시 어느 배고픈 새가 애기물매화 씨를 삼켰고, 그 씨는 뜨거운 새의 몸을 관통하여 몸 안에서 승화된 다른 것들과 함께 따라비오름에 뿌려진 것이리라.
그럼 나의 시는 어쩌면 새의 목젖을 간신히 통과한 정도가 되기는 한걸까?
야생의 냄새 가득한 송당 들녘에 눈발처럼 뿌려져 물매화로 피어날 그 날까지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또 지우리라 과감히 다짐을 해본다.

아낌없이 주는 큰 나무, 오선생님과 정드리문학회 그리고 동갑내기 남편과 딸 하얀이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부족한 작품에 채찍을 가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영주일보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주소 : 서귀포시 동홍동 태성빌라 3차 B동 201호
연락처 : 016-696-6822

 

일간제주의 모든 기사에 대해 반론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됩니다.
반론할 내용이 있으시면 news@ilganjeju.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와 더불어 각종 비리와 사건사고, 그리고 각종 생활 속 미담 등 알릴수 있는 내용도 보내주시면
소중한 정보로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일간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