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의 자연을 간직한 '아니오니골' ⓒ20110815 세상을 향한 넓은 창 - 서울포스트 나종화

책을 정독하는 것 처럼 진중하게 산을 만나고 싶다

어린시절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을 접한 것이 아니라 인쇄물들을 접했을 뿐이다.

일년에 몇 권 뿐이라도 요즘은 정독을 하면서 책에 담긴 풍성한 생명력을 느끼려한다.
지금은 한 달째 중세의 가톨릭 수도사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 받아]가 주는 감동에 사로잡혀 있다.

산도 마찬가지다.
부지런히 산행을 했으면서도 정작 산을 모르는 것은 건성으로 산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책을 정독하는 것 처럼 진중하게 산을 만나고 싶다.

설악산과 지리산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도화지위에 지도 정도 그릴 수 있는 북한산 만큼은 아닐 지라도 설악산의 눈.코.입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정도는 알고 싶다.

감명 깊은 명작을 다시 읽을때처럼 설악과 지리를 새롭게 알아가는 감동도 대단할 것이다. 분주한 내 일상이 그것을 허락할지 모르지만 시간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옛 친구를 만나는 설레임으로 그 산들을 찾아 떠나려 한다.

   
 

2011년 8월 15일

산행 파워블로거 강산님과 야생화와 버섯 그리고 리지 전문가로 유명하신 호박님이 준비한 매우 특별한 설악산 계곡 트래킹에 따라나섰다.

이번에 들어간 이름도 생소한 아니오니골은 백담사 계곡과 십이선녀탕 계곡 사이에 있는 심마니들이나 들낙거리는 미지의 골짜기다.

너무나 아름다워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해서 아니오니?
계곡이 깊고 험해서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하여 아니오니? 골짜기라 한다.
산행 초반부터 깊고 좁은 협곡이 길을 막았다.

   
 

   
 
계곡을 울리는 우렁찬 폭포 소리를 들으면서 협곡 위쪽으로 나있는 희미한 소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하류인데도 발 아래 흐르는 계류는 수정처럼 맑았다.

산행을 시작한지 십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우린 여러개의 폭포와 투명하다 못해 짙은 녹색의 소를 지나면서 산아래 세간의 일들이 뇌리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물의 흐름 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정지된듯한 명경지수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심마니의 제단

아니오니골 초입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있는 절벽 아래 돌로 쌓아놓은 제단이 있었다.
천 조각이 걸려있고 술잔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어 그리 정갈해 보이진 않았지만 심마니들이 입산하기 전에 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뱃 사람들처럼 심마니들 또한 귀한 약초를 찾아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험산을 헤메야 하기 때문에 산행의 안전을 기원할 것이고 특히 산삼같은 경우엔 산신령이 점지해준다고 믿기 때문에 정성껏 제를 올린다고 한다.

우리도 걸음을 멈추고 트래킹의 무탈함을 기원하였다.

원래 인적이 드물어 길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희미한 데다가 이번에 내린 큰 비 때문인지 아예 길이 보이지 않는 구간이 많아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비교적 쉬운 곳을 찾아 아르바이트( arbeit 길을 개척한다는 의미의 산악용어 )를 하는 호박님 뒤를 따라 상류를 향해 올라가는데 갈 수록 빼어난 경치가 발목을 붙잡는 바람에 일행들로부터 자꾸만 뒤쳐진다.
지금까지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다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 아니오니? 골짜기다.

계곡으로 들어갈 수록 숲은 점점 울창해지고 계곡의 수량도 오히려 풍부해진 것 같고 폭포의 스케일도 점점 커져 마치 시간을 거슬러 원시를 향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무를 칭칭 휘감고 있는 굵은 다래덩쿨을 보니 어린시절 열광하면서 보았던 텔레비젼 시리즈 [타잔]이 생각났다.

바위와 고사목은 두터운 이끼옷을 입었고 관목사이엔 고사리 종류인 관중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바로 그 판도라 행성같은 곳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렇게 깊은 산중은 난생처음이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 쓰러진 고사목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수명이 다 되어 생명력을 잃은 아름드리 나무들인데 이끼를 잔뜩 뒤집어 쓴채 지렁이. 온갖 벌레 버섯이 공생하면서 살아가는 소중한 생명의 터전으로서 역할을 하면서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무가 본연의 숭고한 생애를 끝까지 마칠 수 있는 이런 곳이야 말로 원시림이라 할 수 있겠다.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가책에 사로잡힐만큼 아니오니 계곡은 순수자연 그대로였다.

잘 찍은 사진은 아니라도 너무 귀한 풍경들이라서 포스팅 욕심이 난다. / 서울포스트
 

일간제주의 모든 기사에 대해 반론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됩니다.
반론할 내용이 있으시면 news@ilganjeju.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와 더불어 각종 비리와 사건사고, 그리고 각종 생활 속 미담 등 알릴수 있는 내용도 보내주시면
소중한 정보로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일간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