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태곳적부터 가족은 피라미드 구조로 조직됐다. 맨 위에는 신권에서 비롯된 부계 지위가 자리한다. 그 사이를 중개해온 것이 왕이다. 신이 자신의 힘을 왕에게 전하면, 왕은 다시 자기가 통치하는 왕국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이 힘을 전달한다.

이 상징적 질서에서 ‘수직적 가장’이라고 부르는 형태가 태어났다. 아버지라는 전능한 남자가 지배하는 가족 내에서 아무도 권위에 도전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족을 보호하고 가치를 전수하며 분리하는 능력까지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가족 개념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혈통과 역사, 문화와 공통적 규범이 이어지는 곳이 바로 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가족은 나를 조상에게 이어주고, 종교 혹은 토템과 연결점도 만들며, 나를 버린 부모나 생식세포를 건네준 익명의 기증자 등과 연결시키고, 같은 성씨를 쓰게 해준다. 가족은 내가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 꽁꽁 감춰둔 비밀, 수없이 많거나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와 애도 등을 물려준다.

가족은 제약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가족은 나를 주체로 세워주는 관계의 장이며, 내가 주변 세계의 자연 질서에 따르도록 가르친다. 프랑스 정신과전문의 세르주 에피즈의 설명이다.

소설 ‘멍에’는 아버지의 자아찾기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악습의 고리를 끊어 아랫세대에게는 아픔을 물려주지 않으려 하지만, 닮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는 어느 아버지의 설 자리에 대한 번민의 기록이다.

전통적 가족 안에서 성장해 변형된 가족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놓인 주인공은 변하는 가치관을 따라갈 수 없다. 윗세대의 횡포를 용납할 수도 없다. 아랫세대에게 굴종을 강요할 당위성도 잃어버린 세대다. 그의 독백은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서 변하는 개념과 세상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이어나가면서 개구리 짐 받듯 힘겹게 살아 온 낀 세대의 고뇌를 대변하고 있다.

“내가 생애 내내 간절히 소망해 온 것은 도망이었다. 모든 의무, 모든 관계로부터 완벽하게 도망치고 싶었다. 살을 태우고야 말 듯한 불볕을 무릅쓰고 온종일 개펄을 헤매고도 게도, 구럭도 다 잃어버린 꼴이 되었다. 줄기차게 허탕만 치며 아무래도 헛살았다 싶은 자괴감. 그 잡답 속에서 오싹 고독감이 느껴졌다.”

작가 유순하의 이 작품에는 아버지 둘이 나온다. 한 아버지는 이유 없이 아들을 향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고, 이를 합리화하려는 아버지다. 또 다른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 자기 아이들에게는 절대 그런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직업은 자식들의 미움을 받는 것”이라는 말처럼 성공적인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 아버지와 아들, 다시 그 아들의 자녀, 3대의 이야기다.

3대로 이어지는 남의 가족사 가운데 별다른 저항감 없이 지켜볼 수 있는 경우는 대중문화 스타들 정도다. 이예춘-이덕화-이지현, 독고성(전원윤)-독고영재(전영재)-전성우, 김승호-김희라-김기주, 황해(전홍구)-전영록-전보람 등이다. 이들 외에 숱한 2세 연예인들의 2세들도 연예인으로 데뷔할 필요충분조건이 무르익은 세상이므로 스타 3대 패밀리는 흔해질 것이다.

더 주목받는 3대도 많다. 이병철-이건희-이재용이 그 중 대표적이다. 상징과도 같은 이들 삼성 3대도 감히 범접불가인 초월적 블러드 라인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역사발전 합법칙성의 유일한 예외를 제시했고, 인류가 이룩한 모든 이론과 실제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신비로움의 결정체인 주체사상 3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지구인들의 상식을 비웃고 있다.[뉴시스 신동립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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