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시 문화관광체육국 체육진흥과 박원철ⓒ일간제주

대나무는 한자로‘죽(竹)’이라고 쓴다.

이것은‘풀’이라는 한자인‘초(艸)’를 거꾸로 해서 만든 글자로, 일반적으로 나무는 자라면서 줄기가 굵어지지만 대나무는 죽순(竹筍)으로 나올 때의 굵기를 그대로 가지고 자라는 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줄기(성장)는 길어지지만 굵기(지조)에는 변함이 없음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예로부터 선비들의 지조(志操)의 상징은 대나무로 표현되어왔다.

대나무의 줄기가 곧게 쭉 자란 모습은 신념을 지키는 곧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상징하였고 아무것도 채워있지 않은 줄기는 재물을 탐내지 아니하고 세상 허물없이 텅 빈 마음을 가진 사람을 상징하였다.

그리하여 문인화의 대표적 소재로, 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고 고결함이 군자와 같다는 사군자(四君子)에도 속해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현시대를 풍미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나를 지탱해주는 생각과 환경, 그리고 세상이 변하면서 근본이 되는 기본 덕목인 충(忠), 효(孝), 인(仁), 의(義)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인으로서의 청렴과 신념은 모든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인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시인인 고산 윤선도의 시조‘오우가(五友歌)’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보자.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떻게 비었는가? 저렇게 사계절 내내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원문을 해석하고 소재가 된 대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면 변하지 않는 지조(志操)와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없는 군자와도 같은 느낌이다.

이처럼 대나무는 우리가 그려나가고 있는 ‘청렴韓 세상’에 사뿐히 앉아 녹아내리는 하얀 눈처럼 깨끗하고 밝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의미 있는 존재’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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