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도의회가 “재단법인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전부개정조례안” 입법을 예고했다. 이 입법예고안은 4.3특별법의 취지와는 너무 동떨어진 내용으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우선, 이번 조례안 개정의 근거인 2023년 7월의 “조직관리 운영 개선방안 컨설팅 – 제주특별자치도 4.3평화재단” 용역보고서는 재단의 설립근거인 특별법의 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현대사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유린 사태가 해결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치돼 왔다. 여순10.19는 이제야 진상조사 중이고, 보도연맹 등 수많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 중 제주4.3은 진상규명을 향한 끈질긴 투쟁의 성과로 2000년 특별법이 제정됐고, 국가보고서가 작성, 채택됐다. 그 과정에서 제주4.3평화재단이 제주 4.3평화공원을 관리하고 피해자를 추모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주체로 설립될 수 있었다.

그간 국가폭력에 대한 포괄적인 법률 제정과 이를 정부 조직을 통해 한꺼번에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 왔지만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제주4.3은 그런 상황에서 4,3특별법에 근거해 지금까지 해결의 길을 걸어왔다. 제주4.3은 수많은 국가폭력 사건 중의 하나다.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자 단체들이 앞서 제주4.3 진상규명운동이 걸어왔던 길을 눈여겨보고 있다.

지난 15년간 4.3평화재단 운영에 부족함과 아쉬움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제주도지사가 이사장과 이사를 임명한다고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도는 조례 개정의 근거로 이사 선임 구성과 이사장 선출의 불투명성을 대고 있으나 지금까지 이사와 이사장 선출은 공개모집절차와 임원추천위원회의 구성과 활동으로 이루어져 왔다. 제주도는 어떤 점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인지, 반대로 제주 도지사가 이사들을 임명한다고 어떤 점에서 투명성이 강화된다는 것인지 도내 각계의 쏟아지는 의문에 제대로 답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제주4.3평화재단의 설립과 운영은 국회에서 입법 의결한 제주4.3.특별법에 근거한다. 제주4.3의 진상규명운동은 제주도민의 복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제주4.3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분단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대한민국의 역사를 상생과 해원으로 바로 잡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의 설립과정에서 이러한 과제는 결코 도 차원의 문제가 아님이 지적돼 왔고, 그에 따라 관민이 합동하여 제주4.3평화재단을 설립했고 제주도청은 그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그러한 취지에서 다른 출연기관과 다르게 도의 간여와 개입은 최소한으로 제한돼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도가 이사와 이사장의 임명권을 가지고 부지사가 당연직 위원이었던 것을 실·국장 단위로 격하시켜 도의 일개 출연기관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제주4.3평화재단의 근거가 상위 법률에 있음에도 그보다 하위의 법령인 조례로 제주4.3평화재단의 운영의 실질적 주체를 규율하려는 것은 법의 체계에도 맞지 않고 제주4.3진상규명운동을 도의 복리 차원으로 격하시키려는 움직임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이사 임명권의 변경으로 제주4.3평화재단의 향후 활동과 정체성이 도정 책임자의 변경에 따라 좌우될 우려가 다분해졌다. 제주4.3 진상규명운동은 그 거대한 비극과 수많은 피해자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정권의 이익에 따라 빨갱이들의 반란과 폭거로 은폐돼 왔고, 연좌제가 유족과 제주도민의 목을 죄어 왔다. 제주4.3 진상규명운동은 정권의 부침과 관계없이 오로지 정의 구현과 인권존중, 평화 추구의 한길로만 향해야 하며, 따라서 재단의 이사회 구성은 정권의 입김과 관여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최초 설립 시 특별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방기로 말미암아 제주도정이 어쩔 수 없이 민간과 함께 재단을 설립했고, 그러다 보니 행정적으로 출연기관 목록에 도가 등재됐다. 그러나 본질상 재단이 도의 출연기관일 수는 없다. 막대한 국비가 동시에 지원된다는 점에서도 평화재단은 결코 도의 일개 출연기관이 아니다. 실제로 재단이 출연기관 해제를 요청하였음에도 계속 이를 방치해 온 제주도정은 작금의 목적과 의도를 위해 이를 유지해 온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도는 이제라도 한시적으로 유지하기로 했던 출연기관 딱지를 떼어내야 하며, 제주4.3평화재단을 국가적 규모의 재단으로 적극 지원하는데 더욱 헌신하여 주기를 바란다.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제주4.3은 제주도정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4.3의 전국화, 세계화에 힘써온 4.3범국민위원회는 지금의 사태가 제주4.3을 제주도에 한정해 버리는 매우 근시안적인 시각이라 보고 통탄을 금치 못한다.

제주도정에 요구한다. 먼저 문제가 된 컨설팅보고서를 객관적으로 재평가하라. 그리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조례 개정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2023. 11. 03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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