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화의 ‘제주 섬 살이 이야기’10

▲설 명절에는 마을마다 어르신들에게 합동으로 세배를 한다. ⓒ일간제주

요즘은 무엇을 규명하지 못하거나 연유를 따지지 못하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치 인류의 지식세계가 무궁무진해졌다. 심지어 꽃을 피우는 ‘식물이 지구상에 생겨난 때며 그 꽃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었는지를 규명해내었다고 보도된 언론 기사를 읽고는 참으로 홀로 감탄하였다.

어려서 아직 우주만상의 운행과 사람 사는 세상의 시간이 서로 연관이 있다는 것도, 인종과 지역에 따라 그 시간의 가늠이 다르다는 것도 알지 못하던 때는 ‘송아쓰 설 먱질’과 ‘정월 먱질’이란 이름으로 새해를 두 번이나 맞이한다는 게 마냥 신기하고 좋기만 했다.

‘송아쓰 먱질’은 ‘일본 설날’이니 세배를 하지 않아도 그 명절을 쇠는 집 어른을 만나면 세뱃돈도 받았다. 깍듯이 두 손바닥을 펴 돈을 받으면서 ‘정월 먱질’때 세배하겠노라고 하면 덤으로 기특하다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조업에 나서는 고깃배. ⓒ일간제주

사실 제주 섬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설 명절 준비를 공동으로 했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미리 설을 염두에 두고 ‘보재기’(어부)들이 배를 띄워 고기잡이를 하여 빠진 집 없이 ‘제숙’(제수로 쓸 생선)을 마련하게 서둘렀다.

그에다 섣달 보름 경에는 남정네들이 ‘모둠 사농’(공동으로 하는 사냥)을 나서는 건 일 년에 딱 한 번, 설 상차림에 필요한 적감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동네에는 ‘사농 동산’이 있어 아무 시에 모여라 하고 통문이 돌면 그 시간에 맞추어 작대기 한 자루씩 들고 모여든다.

동네마다 소문난 ‘사농바치’(사냥꾼)가 몇 명씩은 다들 있음으로 그 중에서 ‘웃대가리’를 추대한 후 그의 진두지휘 아래 ‘패장’을 정하고는 누구누구는 사냥감을 망보는 ‘망꾼’(사냥감의 행방을 쫓는 패), ‘훈 누는 꾼’(찾아내어 알리는 패), 또 누구네는 ‘다울리는 꾼’(쫓는 패), 사냥감이 옆으로 새지 못하게 차단하는 ‘질 막음 꾼’(길을 막는 패)에다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 포획하는 ‘포수’들로 패를 나눈다.

그렇게 각자에게 임무가 부여되면 오름을 오르고 들판을 내달려 일사불란하게 맡은 바 임무를 다하였다. 조무래기들도 따라가 망을 보고 길을 막으면서 한 일 하기 여반장이었다.

무엇을 사냥하느냐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설 모둠 사냥은 대부분 눈이 내려 산야가 하얗게 변한 ‘눈 우읫 사농’이니 ‘꿩사농’(꿩사냥)이 목표였어도 첫눈에 들어오는 사냥감에 따라 ‘노리사농’(노루사냥)이 되기도 했다.

제주 섬에는 지금도 속담처럼 시정(市井)에 회자(膾炙)되기를, “노리 또린 작대기 삼년 우려 먹는다.(노루를 때려 잡은 막대기를 삼년동안 고아 먹는다)” 라고 누군가가 무용담(武勇談)을 지나치게 남발할 때면 비웃기 서슴없이 한다.

어떻든 설 모둠사냥감은 꿩과 노루였으니 재수가 아무리 나빠도 꿩 수십 마리는 거뜬히 잡았다. 노루든 꿩이든 사냥한 것은 동네 세대수에 따라 공평하게 분육을 하기 마련이었다. 어느 한 세대 빠짐없이 나누었기에 차례상에 귀 갖추어 제물을 진설하지 못하는 집은 단연코 없었다한들 그리 지나친 옛말일까.

언제부턴가 제주 섬에서 사냥을 금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는 설 명절도 한집살림하듯 모둠으로 치렀던 습관을 저버리지 못하고 집집이 돈을 모아 소나 돼지를 구매하여 공동추렴을 해나갔는데 이제는 그것도 도축에 따른 법이 생겨나 못하게 되었다.

결국 남은 건 ‘모둠 세배’이다. 옛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나서 정월 대보름까지 친족이든 아니든 집집이 거른 집 없이 돌며 세배를 하였다. 혹시라도 특별한 사정없이 세배나들이를 생략했다가는 ‘입모둠’(집단 뒷담화)에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질타를 당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긴 시간을 할애할 만치 한가하지 못하니, 설날 당일에 마을회관에 한데 모여 나이듦에 대한 확인으로 육지에서도 다 하는 합동세배를, 새해 인사를 나눈다.

▲어린이들이 설 명절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모습.<사진 뉴스1 제공>ⓒ일간제주

정말로, 아무리 세상이 변하였어도 설날 동네풍경으로 잊지 못하는 게 있다. 온종일 큰길이든 골목길이든 어디든지 온 동네가 사람으로 가득 차고 넘쳤다. 또래는 우정으로, 남녀는 사랑으로, 어른에게는 예를 다하고, 있는 이는 나눔을, 없는 이에게는 온정이 물결치던 광경이다.

사족(蛇足), 어린 시절 ‘정월 먱질’은 뭐니뭐니해도 설빔이 무엇일까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섣달그믐께 며칠 동안이었다. 그 기다림의 마지막 날밤, 설날을 맞이해야 하니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새고 얼굴은 광대 모습으로 변한다는 부모님 꾐에 넘어가 새벽 첫닭이 울 때까지 버티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 보면 참 가관이었다.

숯 검댕으로 그려진 광대 가면 같은 얼굴하며 눈썹에는 쌀가루 반죽이 묻어 정말로 희디희었으니 그 놀란 가슴을 무엇에 빗댈까, 막 몽니를 부리려다 주춤하는 사이 따뜻하게 데워놓은 물로 세수하고 설빔을 입으라는 소리에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비록 광목에 물을 들였을망정 노란저고리며 검정치마에다 새신을 갖추어 신으면 정말로 이제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날 준비를 갖췄으니 그 나이에 걸맞게 의젓해지려 무던히도 애를 쓰던 그 ‘정월 먱질’ 첫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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