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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쩌귀

-이 윤 경-

친정집 위채에는 양쪽으로 여는 여닫이문이 달려있다. 격자무늬 나뭇살 위에 한지가 착 감겨있다. 나는 그 문을 좋아했다. 새까맣게 반들거리는 동그란 문고리도 정겹다. 그 문고리에는 오랜 세월 동안 잡고 당겼을 가족들의 손자국이 얼마나 많이 묻어있을까? 어머니가 늦은 밤이면 문고리를 안으로 걸고 구멍 속에다 숟가락을 꽂아 두고 뚫려진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고는 했었다. 구멍으로 들려오는 작은 바람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던 유년의 기억이 그 문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문고리를 잡고 당겨보았다. 문이 뻑뻑하니 쉽게 열려지지 않았다. 힘을 주어 억지로 잡아 당겼다. 문은 괴로운 듯 끼익 소리를 내며 조금씩 열렸다. 몇 번 열었다 닫았다 하며 어디가 문제인지를 살폈다. 내 예리한 눈에 그것이 걸려들었다.
돌쩌귀, 돌쩌귀에 문제가 있었다. 나는 대뜸 큰오빠에게 전화부터 했다.
“오빠, 윗방에 문이 잘 안 열려요. 돌쩌귀가 뻑뻑해서 그런 것 같아요.”
큰오빠는 쉬는 날 한 번 다녀가겠다고 했다. 전화를 해 놓고 보니 하루하루 벌어서 사는 큰 오빠의 시간을 빼앗았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큰오빠는 시골집의 일이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이면 열일을 제쳐 놓고 달려왔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도 빗물에 담벼락이 내려앉았을 때도, 어머니가 몸이 아프실 때도 큰오빠는 어머니 곁에 와 있었다.
삐걱거리는 돌쩌귀를 살피다 큰오빠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돌쩌귀는 문틀과 문을 이어주고 고정시키는 장치다. 요즘 만들어진 문에는 경첩을 주로 쓰지만 오래된 한옥 문에서는 투박하게 생긴 돌쩌귀를 흔히 볼 수 있다. 암 돌쩌귀는 문틀에 단단히 박혀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되어 있고 수 돌쩌귀는 문 쪽으로 박혀서 뾰족하게 튀어나온 침을 암 돌쩌귀에 걸고 문을 여닫을 때 마다 빙그르 돌아간다. 눈에 잘 뜨이지는 않는 구석진 곳에서 육중한 나무문을 짊어진 돌쩌귀는 문의 움직임에 따라 묵묵히 움직이고 있었다.
큰오빠의 자리는 문틀과 문짝 사이, 눈 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틈새 같은 곳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맏아들인 큰오빠에게는 무거운 등짐이었을 것이다. 젊은 혈기로 큰오빠는 그 무거운 짐을 던져버리고 집을 나갔다. 낯선 주소로 몇 달에 한 번씩 보내오는 짧은 편지로 오빠의 소재나마 알 수 있었다.
몇 년간의 길었던 방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큰오빠가 결혼을 했다. 야무지고 부지런한 새언니를 만나면서 그제야 집안으로 한 다리를 걸치게 되었다. 그때까지 큰오빠의 빈자리를 형부들이 대신 채우고 있었다. 그 시절 귀하던 컬러텔레비전을 싣고 온 것도, 밀린 내 등록금을 내어준 것도 큰오빠가 아니라 형부들이었다. 멀리 떨어져 사는 큰 오빠는 명절이 아니면 얼굴 보기도 힘이 들었다. 자연히 다른 형제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 왁자한 가운데 끼지 못 하고, 큰오빠는 서성거리며 집 언저리를 맴돌았다.
삐걱대는 문을 들여다보다가 아예 문짝을 빼내었다. 돌쩌귀의 틈새마다 벌건 녹이 앉았고 먼지가 달라붙어 매끄럽지 않아서였다. 먼지를 닦아내고 샌드페이퍼로 녹을 밀어냈다. 문을 빼내기는 쉬웠는데 끼우기가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겨우 암 돌쩌귀 속으로 수 돌쩌귀를 이를 잘 맞춰 끼우자 덜컥하고 문이 제자리를 찾았다. 훨씬 매끄럽게 움직였다.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시 큰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내가 문 고쳤어요. 안 오셔도 될 것 같아요.”
전화선을 타고 오빠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런 것도 할 줄 아나? 그래 고맙다.”
나는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큰오빠에게는 존댓말을 했다. 열일곱 살의 나이 차이 때문인지 늘 어려웠다. 형부들이 등에 업히기도 하고, 팔을 베고 장난도 쳤지만 큰 오빠와는 그리 살가운 기억이 없었다. 늘 한 걸음 가족들의 뒤에 물러나 있던 큰 오빠가 십여 년 전 가까운 도시로 내려온 후 부터는 부쩍 집에 자주 다녀갔다.
큰 오빠가 다녀간 뒤면 집 주변이 말개져 있었다. 낫을 들고 집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어내고, 오래 된 전선을 새것으로 갈고 낡은 평상을 튼튼하게 고쳐두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제삿장도, 어머니의 생일상도 큰 오빠가 준비했다. 그렇게 큰 오빠는 조금씩 가족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일이 터졌다. 도시 사람들이 동네의 집들을 사러 다녔다. 우리 집은 낡고 허술하긴 해도 집과 맞붙은 뒷산과, 동네가 훤히 보이는 전망 때문에 많은 값을 쳐준다고 했다. 가족회의가 열렸다. 다른 형제들은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읍내에 깨끗한 집을 사서 어머니가 그리로 이사하기를 원했다.
어머니와 큰 오빠가 끝까지 반대했다. 언니들은 큰 오빠가 어머니를 설득했다고 생각했다. 집의 명의도 언제 큰오빠 앞으로 해두었다. 어머니를 뺀 모든 가족들은 큰 오빠가 집에 욕심을 내는 거라고 오해를 하기 시작했고 회복되어 가던 관계가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가장 힘든 사람이 어머니였다. 형제들이 손바닥만한 집 하나를 두고 옥신각신 하는 것이 속이 상하셨던지 덜컥 병이 났다. 입이 돌아가고 손을 잠시도 쉬지 않고 떨었다. 큰 오빠가 모시고 가서 검사를 했더니 중풍의 초기 증상이라고 했다. 놀란 우리는 무조건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모두가 떠난 병상에서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 큰오빠한테 너는 그라면 안 된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중학교 시절 나는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대도시의 큰 병원에서 한참동안 입원을 했었다. 그때 엄청나게 나왔던 병원비를 큰 오빠가 다 내었다고 했다.
“지가 그때 뭔 돈이 있었겠노. 전세금을 다 빼고 손바닥만 한 산동네 월세 방으로 옮겼지.” 나는 그 방을 기억한다. 서울 구경하겠다고 여름 방학 때 올라가서 며칠을 지냈던 작은 방, 서울에 이렇게 구질한데가 다 있냐며 속으로 투덜거렸던 그 방을 기억해냈다. 어린 막내 동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산동네 좁은 방으로 이사를 한 큰오빠의 새까만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가슴이 먹먹해왔다. 큰오빠와 새언니는 한 번도 내게 그 일을 내색한 적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조차도 지금껏 모르고 있다.
돌쩌귀를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생긴 모습처럼 투박하고 거칠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수없는 마찰의 순간들을 견뎌냈기 때문일까 쇠붙이인데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마치 큰 오빠의 억센 손 같았다. 돌쩌귀 같은 큰오빠의 손에서 가끔씩 아버지가 언뜻 언뜻 비쳤다.
문을 닫고 동그란 문고리를 걸어두었다. 큰오빠가 다녀가고 나면 문이 더 매끄럽게 열려질 것이다.

<심사평>

자신은 자신의 인생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수필에 손을 댄다. 자신의 얘기를 쓰는 것이니까. 그러나 글쓴이가 내 놓는 이야기는 진솔하고 영혼을 떨게하는 깨달음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수필이 단순히 글쓴이의 신변잡기나 잡담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응모작 199편중에 많은 작품들이 상당한 수준작이다. 그 만큼 수필공부를 치열하게 하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다.
최종 심사에 오른 이윤경의 ‘돌쩌귀’와 정병율의 ‘선로’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어느 것을 택하여도 좋을 정도로 팽팽했다.
정병율의 ‘선로’가 관찰이나 주제를 몰고가는 구심력이 뛰어나나 글의 전개가 반복적이여서 다소 지루하다는 점이 애써 찾아낸 흠이다. 아쉽다.
이윤경의 ‘돌쩌귀’는 큰 오빠에 대한 얘기다. 자신의 숨겨진 마음의 깊은 곳을 노출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돌쩌귀’는 자신을 보는 눈에서 출발해서 타자(他者)를 거울에 비쳐 자신의 모습을 본, 그렇게 그려낸 따뜻한 작품이다.
<심사위원 서경림, 김가영>

<당선 소감>

 

▲ 이윤경 당선자

대구에는 아직도 첫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눈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마흔이 낼 모레인 지금에도 아이처럼 일 년 내내 겨울을 기다렸습니다. 오래 전 한라산에서 보았던 순백의 눈부심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아직 첫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멀리 제주에서 날아온 반가운 당선 소식에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늘 내 안에는 어긋난 돌쩌귀 같은 삐걱거림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활짝 열어 두지도 못하고 늘 어정쩡하게 어긋나서 덜거덕 거리는 시간들이 고여 있었습니다. 글을 쓰고 공부를 하면서 내 눈과 마음의 각도가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고여 있던 아픔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비우고 다시 채워 가면서 세상이 따뜻하고 살만하다 여겨졌습니다.

오늘 제 가슴위로 함박눈이 쏟아집니다. 아직 설익은 제 글에 당선의 기쁨을 더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쌓여진 눈을 굴려서 눈사람도 만들고 멋진 조각품도 만들겠습니다.
열정이란 단어의 참 모습을 보여주신 홍억선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돌쩌귀 같은 큰오빠께도 감사드립니다. 늘 제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1971년 경북 성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과 재학
200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창주 문학상, 산사랑 시 공모전 환경부장관상 수상
2010년 영주 신춘문예(뉴스제주) 수필 당선
수필사랑문학회, 대구아동문학회, 성주문학회 회원

※연락처:018-503-8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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