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또 미뤄진 기초자치단체 출범, 제주도정은 도민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아야!!”

2025-10-30     양지훈 기자
▲ ⓒ일간제주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민선8기 최대 공약으로 내세웠던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출범’을 결국 다음 도정으로 넘겼다.

그는 “행정안전부의 준비기간 필요성과 일부 이견 조율을 이유로 민선9기로 이관하게 됐다”고 설명했지만, 도민사회가 느끼는 실망과 피로는 작지 않다.

도민이 수년째 기다려온 행정체제 개편이 또다시 미뤄지면서, ‘책임 회피’와 ‘추진력 부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는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니라, 제주 자치분권 완성의 핵심 과제로 인식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지사는 임기 말에 이르러서야 “법 제정 후 1년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며 다음 도정에 사업 이관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정이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다는 점이다.

법 절차와 행정 준비의 현실적 제약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정은 도민 공론화와 주민투표 논의 등으로 기대를 높이며 정치적 성과를 앞세웠다.

결국 “행안부 입장”이라는 이유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주정가의 중론이다.

도민의 인내를 시험한 결과를 행정 절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도민 신뢰에 대한 배신이다.

특히, 오 지사는 “불법계엄 사태와 장관 공백 등 정치적 요인으로 논의가 중단됐다”고 했지만, 실제 문제는 정치적 변수가 아니라 행정의 리더십 부재와 정책 추진력의 한계다.

앞서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꾸려지고 공론화 절차가 진행됐지만, 핵심 법안 준비와 중앙정부 협의는 사실상 공전(空轉)했다.

도정이 말로는 “도민 주권”을 외치면서도, 실질적 협상력과 정책 설계 능력에서는 미흡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결국 정치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내세운 건, 스스로의 무능을 가리기 위한 방패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날 오 지사는 내년 1월 ‘특별자치분권추진단’을 신설해 포괄적 권한이양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조치는 실질적인 대안이라기보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한 조직개편용 처방으로 비칠 위험이 커 보인다.

이미 기초자치단체 출범 준비단이 있었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또 다른 추진단을 신설한다고 해서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새 이름의 조직을 만들기 앞서 보다 필요한 것은 명확한 비전과 실행력이다.

제주도의 자치분권, 구호가 아닌 결과로 보여줘야하는 것이다.

제주도는 지난 20년간 ‘특별자치도’라는 이름 아래 수천 건의 권한을 이양받았지만, 도민이 체감하는 행정 변화는 여전히 미흡하다.

이번 기초자치단체 출범 무산은 제주 자치분권이 여전히 제도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음을 드러낸 사건이다.

이제 제주도정은 더 이상 “내실을 다지겠다”는 말로 시간을 벌어서는 안 된다.

도민이 원한 것은 완벽한 계획서가 아니라 실행과 결과였다.

정권과 도정이 바뀔 때마다 “다음 기회에”로 미뤄지는 자치 개편은 도민의 정치적 피로만 키울 뿐이다.

도민의 신뢰는 바로 행정의 책임에서 출발한다.

기초자치단체 설치는 제주 자치의 완성을 향한 도민의 오랜 염원이다.

그 염원이 행정의 타성 속에 또다시 묻히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오영훈 도정은 스스로 내세운 ‘국민주권정부의 지방분권 모델’이라는 말을 행정적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도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책임의 정치다.

제주도정은 도민의 인내심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