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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주의 여인 거상, 흉년의 빈민을 구휼한 의인 김만덕서귀포시 여성가족과 여성지원팀장 김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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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20  15: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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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가을 10. 18일 오전 10시 제주시 모충사 내 김만덕 묘탑에서 제41회 만덕제 봉행이 이루어졌다.

코로나19로 현장이 아닌 TV방송을 통해 접해야 했지만 김만덕 일대기를 들으며 다시 한번 그 위대함에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았고 소개하고 싶어졌다

의인 김만덕은 엄중한 유교문화의 조선시대 여성이었지만 스스로에게 한계선을 긋지 않고 끊임없이 인생을 개척해 나가며 도전했던 분이다.

1739년 양반의 딸로 태어났으나 12세에 부모를 잃고 수양딸로 보내져 가무를 배우고 기녀의 신분이 되었지만 끊임없이 노력하여 양반의 신분을 회복하고, 20살이 되던때 객주가 된다.

조선 후기 향해술과 조선술로 해상교통이 크게 발달하자 김만덕은 객주를 포구가 있는 곳으로 옮겼다. 포구에 차린 객주에서는 숙식을 제공하던 단순한 일에서 상인들 간의 상품을 위탁받아 팔아주는 중간상의 역할로 변모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꿰뚫어 제주 최고의 부자로 제주도를 대표할 거상이 된다. 지금도 제주시 건입동 소재에 재현된 “김만덕 객주”에서는 파전에 막걸리를 먹을 수가 있다.

1790년(정조 14)부터 1794년까지 5년간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아사의 위기에 처하자 조정에서 구휼미를 보내지만 쌀을 실은 여러척의 배가 풍랑에 난파하여 힘든 상황이 오자 김만덕은 전 재산을 내놓아 육지에서 곡물을 사들여 구휼하는 자선을 베풀었다. 이러한 선행으로 정조가 상을 주려하자 김만덕은 이를 사양하고 당시 남성도 제일 가고 싶어하는 금강산 유람하기를 청하자 이를 허락했다.

당시 제주민들은 출육금지령이 내려졌던 시기이나 여성임에도 육지로 나갈 수 있었고 당시 엄중한 유교 규범으로 집안에 갇혀야 했던 여성의 이동의 자유를 요구하여 금강산 유람으로 여성에 대한 금기를 깨뜨린 앞선 근대여성이었다. 늘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고, 나눔으로 상인의 도리를 실천한 시대를 앞서갔던 지도자였다

코로나시대를 겪고 있는 지금의 힘든시기에 김만덕 의인의 위대한 나눔과 베풂 정신은 더없이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있어 그 울림이 더 크다

“재물을 잘 쓰는자는 밥 한 그릇으로 굶주린 사람의 인명을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썩은 흙과 같다”(거상 김만덕)

자녀와 함께 나눔의 중요성을 깨닫는 곳, “김만덕기념관”도 방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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