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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상생굿’은 이러한 상처의 치유를 통해 어처구니없는 죽임을 당한 ‘원혼(冤魂)’들의 넋을 풀어내는 의례이다. 당시 죽임의 공간이었던 ‘땅’의 슬픈 역사도 아울러 치유하는 ‘날 것’ 그대로의 굿판인 것이다.

제주민예총은 지난 2002년 다랑쉬굴 해원상생굿을 시작으로 이러한 ‘죽음의 터’를 찾아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학살터와 사라진 마을들을 다시 사람이 깃드는 땅, 생명이 움트는 땅으로 바꾸는 상생굿을 벌여 왔다.

4.3은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수 백 년 이어져온 마을과 지역사회의 공동체 문화는 물론 이 땅의 고유한 정체성마저도 빼앗아갔다.

사람들의 숨결이 머물던 자연이 죽음의 땅으로 바뀐 곳 또한 많다. 4.3으로 헝클어진 제주의 자연은 뒤이어 진행된 무분별한 난개발로 더더욱 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도령모루라는 고유의 아름다운 지명을 잃어버리고 지금은 해태동산이라 불리는 이곳 또한 예외가 아니다.

4.3 당시 60여명의 희생자를 낸 아픔의 땅에서 어느 순간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자본을 내세운 특정업체의 이름으로 대표되며 제주의 근본은 사라져 버렸다. 4.3때 총칼을 든 외부 세력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돈을 앞세웠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때문에 제주4.3항쟁의 완전한 해결은 진실과 정의, 배상, 재발방지로 이어지는 국제법적 기준뿐만 아니라 제주의 정체성 되찾기 운동이다. 오늘 이곳 도령모루에서 4.3해원상생굿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 4·3해원상생굿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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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상생굿을 왜 하는가?

그것은 예술의 쓸모 있음에 대한 모색이면서 동시에 예술의 쓸모 없음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신화에서 세속의 시간으로 내려온 인간의 시간-역사의 길을 예술이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 신을 울리고 영개를 울릴 수 없음에 대한 지독한 독백이요 절망에 대한 다른 몸부림이다. 예술이 원초적인 인간의 영혼을 치유할 수 없으리라는 어떤 예감, 그 한계에 대한 나름의 처방전이다. 예술은 보다 근원적인 느낌을 향하여 늘 질주하고자 하는 관성을 지니고 있다. 해원상생굿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해원상생굿은 예술가들이 기획하고 준비하지만 극이 아니다. 즉, 연출되지 않는다. 해원상생굿의 미학은 ‘날것’의 미학이다. 잘 만들어진 공연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생한 느낌을 만나는 일이다. 4·3의 와중에서 죽임을 당한 제주 주민들은 역사를 만났을 뿐이다. 일상의 주민들이 잔인하고 거대한 역사의 대하를 만났을 때, 그 당혹감과 처참함은 ‘날것’으로서의 이질감, 즉 낯섦이다.

해원상생굿은 인간만을 위무하지 않는다. 비극적 죽임을 당한 ‘학살의 터’를 찾아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상처 받은 장소, 즉 ‘죽임의 장소’였던 자연의 공간까지도 함께 치유하는 ‘상생의 굿’이며 ‘생명의 굿’이다. 그러므로 이 굿은 인간과 자연이 동시에 치유되어야 할 대상임을 일깨우는 일이며, 이제는 죽음의 터전이 되어버려, 상처로 인해 몸서리치는 ‘죽은 땅’을 되살리는 ‘회생의 제의’이기도 하다.

해원상생굿은 현재의 문화예술과 전통적인 연희인 굿을 빌려 죽은 자와 죽은 땅에 보시하는 일이다. 맺힌 죽음, 맺힌 땅을 풀어주는 본풀이이며 땅풀이다.

해원상생굿은 예술적 위령제의 우리식 전형을 창출하고자 한다. 모든 의례는 공식적이다. 그것은 결국 그 시대의 권력화된 형식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현재 4·3위령제 역시 초기 합동위령제의 민중성, 민중적 미의식은 탈각되고 관주도의 공식적인 기념식일 뿐 위령제의 원초적 의미마저 망실되고 있다. 그러므로 해원상생굿은 비공식적, 문화예술적, 민중적 의례로서의 위령제를 지향한다.

해원상생굿은 예술과 의례, 굿과 예술, 연행예술과 조형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장르 해체와 재결합을 통한 복합예술적 시·공간예술을 창출하고자 한다. 해원상생굿은 예술과 의례, 연행장르와 조형장르, 서구적 문법과 전통적 문법의 복합체이다. 서구적 장르로 분리되어버린 경계를 허물고 예술과 민속학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 안의 민중적 의례로서의 총체적 굿을 통해 죽음의 기억과 장소의 왜곡된 역사성을 되살리는 회생의 의례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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