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식 칼럼]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기대하며”

▲ 황의식 칼럼니스트ⓒ일간제주

신고리 5 · 6호기 공론화와 녹지국제병원 공론조사 사례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던 것 중에 하나는 정부주도인 하향식 공론화는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민이 주도한 상향식 공론화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사례의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정책결정자가 주도한 공론화와 시민들이 요구한 공론화의 차이를 떠나 정책결정권자의 의도나 의지에 따라 정책결정이 된 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미 결정해 놓은 사안을 공론화라는 포장을 함으로써 의미를 좀 더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향식 공론화는 이 부분에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일방적인 정보전달 및 여론주도를 통해 변색될 수도 있다. 상향식 공론화의 경우도 이미 결정된 사안을 떠밀려서 공론화를 진행하다보면, 퇴색되고 오염된 정보전달과 성의없고 무책임한 대응과 답변을 하게 되고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와 상관없이 이해충돌을 야기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탈원전 공론화는 2017년 6월 27일 국무회의에서 공론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공론화위원회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신고리 5 · 6호기 공론화 준비단”을 설치하여 7월 17일 ‘신고리 5 · 6호기 공론화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국무총리 훈령 제690호)을 제정하였다. 법제화 하지 않은 것을 국무총리 훈령으로 대의민주주의를 우회했다.

녹지국제병원 공론화는 시민들의 숙의형 정책개발청구를 제주도가 받아들여 공론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진행했다. 특이할 점은 2017년 11월 15일에 전국최초로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조례'에 근거한 점이다. 비록 조례이지만 제도화에 한 획을 긋고 숙의민주주의 발전에 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이 된 녹지국제병원의 허가 후폭풍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근본적인 이유는 사업승인과 개설허가의 주체가 서로 다른 상태에서 시작된 사업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12월 18일에 제주녹지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의 사업계획서를 승인했다. 그리고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조건부허가를 했다. 사업계획서 승인은 보건복지부가, 개설허가는 제주특별자치도가 관할한다. 만일 사업승인과 개설허가 주체가 보건복지부로 단일화되어 있었다면 제주도가 이 문제를 떠안을 이유가 없었다.

현행 의료법에 의해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사업자가 계획대로 자본을 투입해 건물을 짓고 인력을 고용해야만 '개설허가'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의료법에서 외국인의료병원인 경우는 제주특별법 제307조와 제주특별자치도 보건의료 특례조항 제17조(의료기관의 개설허가 요건)에 따라 두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의료법 시행규칙 제34조(의료기관의 종류별 시설종류와 시설규격)이고 다른 하나는 동법 시행규칙 제38조(의료인 등의 정원)다. 이 두 요건에서 정한 규정에 적합해야만 '개설허가 신청'을 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춰진다.

사업자 입장에서 이렇게 갖춰놓고도 개설허가를 받지 못하면 투자한 비용을 모두 잃게 된다. 때문에 개설허가권을 갖고 있는 제주도지사가 '불허'할 경우, 제주도정은 자연스레 이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물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안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제제는 대의민주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중앙정부와 국회, 지방정부와 의회는 정책결정기구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녹지국제병원관련 해서 보건복지부의 사업계획승인에 관하여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 허가승인에 관해서도 제주특별자치도의회도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단지 일부시민들의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 불이행에 따른 저항과 일부도의원들의 도지사에 대한 비난과 요구가 있다. 도정에 책임전가만 하는 의정활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마땅히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정책결정자로서 시민여론에 등을 돌린 점 또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을 들여다보게 되면, 사업의 이원화와 정책결정의 이원화에 대한 난센스와 이에 대한 이해부족도 문제가 된다. 더불어 대한민국국회와 제주특별자치도의회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대의민주주의 정책결정기구가 시민여론조사기구의 권고사항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자신들의 책무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숙의민주주의는 기존 여론조사의 숙의성 부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성 결여라는 한계를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숙의를 거친 후 합의한 의사를 공론조사로 확인하는 것이다. 공론조사는 이상적 관점에서 충분히 정보가 제공된 여론과 실제여론 사이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것으로서 시민 여론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여론을 핑계로 책임을 묻는 것만 한다면 대의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종결정은 정책결정기관이 시민 여론을 고려한 후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하는 것이다. 녹지국제병원관련해서는 의회의 반성도 필요하다. 대의기관으로서 책임을 회피해서도 안 될 것이다. 민의가 도정에 반영되도록 철저하게 준비된 의정활동을 기대한다. 앞으로 녹지국제병원 관련해서 심도 있는 논의와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이어서 두 공론화 사례를 정리하면서 숙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과제를 제시하고 자 한다.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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