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시 기획예산과 오동근ⓒ일간제주

봄 바람을 품은 주말의 화창한 날씨가 산행을 이끄는 어느 날이었다. 하늘의 청명함에 탄복하고 대기의 신선함에 흐뭇한 미소를 날리며 숲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호기심에 핸드폰에 다운 받아두었던 미세먼지 관련 앱을 확인한 순간 적막과 함께 뜨악해졌다. 핸드폰 화면 속 이모티콘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매우 나쁨” 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온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돌아가신 서정주 시인께서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했거늘 그리움을 채 장착하기도 전에 나를 찾아온 푸르른 그 분이 미세먼지일 줄은 시인께서도 몰랐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푸르름의 정체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나니, 나의 발걸음도 도인이 되어 버린 듯 태고 적부터 산행에서 간간히만 시전 되었던 유턴의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하산하는 내내 밭은기침 소리를 닮은 메아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파란 하늘을 잿빛의 공허함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창문을 끝까지 닫아 올려놓고는 숨을 몰아쉬는데 갑자기 헛웃음이 터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심하다. 건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하나로 산의 정취와 그것에 어우러진 휴일의 햇살과 또 그 햇살 사이사이에 숨어 있었을 온화함과 따뜻함에 치유를 온전히 날려버린 것이다. 이런 부질없는 작태를 전문용어로 “폭망”이라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차를 다시 돌리려 하다가 부끄러움이 녹음보다 짙어질 것 같아 가속페달에 무게를 실었다. 엔진 배기구 사이로 타다가 만 석유의 잔영이 미세먼지 사이로 유유히 퍼져 나갔다.

잠자리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으로 불면의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다가왔다. 유년시절에는 보이는 것들이 두려웠다. 목욕탕 아저씨의 문신이 두려웠고, 시장통 한 구석에서 서로에게 고성을 날리는 아주머니들의 표독스런 표정이 두려웠고, 집 앞에 가끔 나타나 꿈틀대던 뱀의 움직임이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보이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두려움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문신보다는 마음에 각인될 상처가 두렵고, 사람들에 표정보다는 그 뒤에 감춰진 냉혹함이 두렵고, 뱀의 꿈틀거림 보다는 미세먼지의 하늘거림이 두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직자로서의 청렴함이 두렵다.

주위를 보면 온통 바르고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뿐인데 시민들의 인식과 평판은 냉정하다. 공직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지만 나쁜 일부가 양산한 나태와 부정의 선입견은 미세먼지처럼 시민들의 인식을 떠다니고 있다. 그것이 너무 아프고 무섭다.

이제는 날씨가 맑은 날이 되면 심장이 터지도록 들숨 날숨을 몰아쉬며 달려야겠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유해함에 전전긍긍 하는 것보다는 내 머리 위에 파란 하늘과 눈부심을 만들어내는 햇살을 가르는 것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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