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자면 건설담당 고성협ⓒ일간제주

어제는 추자도에 근무한 이후 가장 센 바람을 경험했다.

항구에 면한 도로 일부는 바닷물이 넘쳤고 바다쓰레기가 사방에 날라 다녔다.

한밤중에도 바람은 잦아질 줄을 몰라 창문에서는 밤새 여자 울음소리인 듯 음산한 소리로 악몽에 시달렸다. 아침엔 늦잠을 자는 바람에 간신히 지각을 면했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나른하게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감독관님, 케이블카 공사중 교각이 넘어져 작업중이던 바지선을 덮쳤습니다. 빨리 와주셔야 겠습니다....” 추자본도와 인근 섬을 잇는 삭도공사 현장소장의 다급한 전화다.

머릿속이 하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순간 머리속에는

‘케이블카 공사 중 교각 붕괴, 바지선 침몰, 거센 파도에 실종자 수색 난항’ 보도와 발주청의 공사관리가 문제점이라고 집중포화를 쏟아내는 언론사들이 보였고, 온 바닷가를 실종자 찾느라 매일 동원되는 공무원과 주민들이, 경찰과 감사기관에 조사를 받으러 다니는 창백한 내가 보였다.

‘아! 도망가고 싶다.’ ‘아니다. 현장을 가봐야지. 맞아, 우선 보고서를 만들어야지.’

다행히 실종자는 없었으나 사상자가 5명이 발생하였고, 배는 침몰되었다. 검찰은 현장소장을 구속했으며, 현장사무실 및 본사를 압수수색하여 부실공사 및 안전관리 문제점에 대해서 수사가 진행중이다. 공사는 당연히 무기한 중지되었고, 수사과정에서 감독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

‘받았다. 기억 난다. 그러나 정말 무심결에 받았다. 억울하다.’

현장에서 소장이 안전화라도 구입하라고 상품권을 건넸다. 사양했다. 나중에는 기성서류에 끼워서 사무실 책상에 놓고 갔다. 거절하기도 귀찮고, 친절을 무시하는 것 같아 책상 서랍에 놔 두었던게 화근이 되었다.

‘아!..불행은 한꺼번에 오는구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난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가족들에게 뭐라고 하지, 지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직원들이 쑥덕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그럼 그렇지. 잘난 체 하더니만.. 뒤에선 비열한 짓은 혼자 다했군..’, ‘잘됐다. 혼 좀 나봐라..’

분하고, 억울하다. 그러나 자업자득이다. 어째든 나는 금품수수를 했고 잘못된 것이다.

‘그래, 비굴하게 살지 말자. 이제라도 나의 죄를 속죄하자. 죽음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죽자.’

면장님이 부른다. “고 계장, 삭도건설계획 보고서 작성 됐어?” “아..” 1초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예, 예~~ 다 되었습니다. 오전내로 보고 드리겠습니다.”“시장님께 보고해야 하니까 서둘러.”

꿈이었구나... 찰나의 순간 꿈을 꾸었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다. 지금도 꿈은 아니겠지..

꿈속에서 난 죽음보다 더한 절망을 느꼈다.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수치심과 자괴감에 심연의 나락에서 나는 살아 돌아왔다.

싸늘한 음지의 그늘에서 양지의 대지로 돌아왔다.

그렇다. 난 꿈속에서 현실보다 더 절박한 현실을 느꼈다. 잊고 지냈었다.

한순간의 안일한 선택이 삶의 절벽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올 수 있음을...

공직생활이 나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이라면 나에게 있어서 청렴은 양심의 문제이기 전에 생존의 문제였다. 나는 이제야 정확히 자각할 수 있다.

청렴만이 무사히 공직생활을 연명할 수 있는 길이며 생존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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