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전혀 다른 사람인데도 같은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얼굴이 똑같이 생겼으면 두 사람의 말씨며 행동도 비슷하고 운명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거냐고….”

미국 드라마 ‘콜드 케이스’의 재미 중 하나는 닮은꼴 비교다. 죄인이 범행 수십년 뒤 체포되는 이 수사물에서 현재의 늙은이, 즉 과거 사건의 가해자는 당시의 청년과 놀랄 정도로 빼닮았다. 노인 분장을 시킨 것이 아니라 이목구비가 엇비슷한 젊은이를 캐스팅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도 유사한 외모를 찾고 있기는 하다. ‘해를 품은 달’의 여진구 김수현과 김유정 한가인, ‘사랑비’의 장근석 정진영과 윤아 이미숙, ‘적도의 남자’의 이현우 엄태웅과 경수진 이보영, ‘건축학개론’의 이제훈 엄태웅과 수지 한가인 등, 많다.

닮았다, 아니다, 서로 우겨대지만 덜 닮은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교집합을 이룬 엄태웅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이현우와 이제훈이 보기다. 흡사한 용모와는 거리가 멀다.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의 이상엽과 이제훈을 헷갈린다면 오히려 정상이다. 장근석 또한 정진영보다는 윤철형에 가깝다.

이 둘 뿐 아니다. 어금버금한 인상들은 수두룩하다. 주원 강동원, 이진욱 이정수, 조여정 김지석, 김기열 이중성, 문채원 유이, 아이유 신봉선, 유재석 정범균, 현빈 재희, 서현 손은서, 소희 백진희, 정재형 이봉원, 신애라 진양혜, 이효리 조윤희, 이다해 아이비, 이세창 이상훈, 유해진 박지성…. 박명수는 이승철이라고 주장하나 데뷔 당시 MBC 코미디 작가는 “서세원과 똑같이 생긴 신인이 나왔다”며 즐거워했다.

얼굴이 비스름하면 목소리도 고만고만하다. ‘리틀 지미’라고 불린 이상아는 김지미처럼 음성이 걸걸하다. 주병진과 윤제문도 마찬가지다. 쇳소리가 약간 섞인 육성이 듣는 이를 무릎치게 만든다.

모창 가수들이 새삼 입증하고 있는 명제이기도 하다. 너훈아 주용필 박형빈 방쉬리 현칠 등 임퍼서네이터들이 나훈아 조용필 박현빈 방실이 현철의 노래를 부를 때면 가뜩이나 저만한 얼굴이 오리지널의 표정으로 치닫는다.

덜 닮은 이가 특정인의 성음을 흉내낼 때면 근육 자체가 뒤틀린다. 엄용수 최병서 심현섭 배칠수 등 ‘인간녹음기’들이 정주영 김대중 김동길 등 유명인을 모사하는 순간의 얼굴 모양을 살피면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붕어빵과도 같은 자녀의 전화 목청소리를 듣고 부모로 착각한 경험은 대개들 있다. 쌍둥이는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얼굴을 형성하는 악안면 구조가 닮으면 주위 근육의 형태는 물론 목의 발성기관을 누르는 보컬 색(소리 주머니)의 진동도 거의 같아진다. 울려 나오는 후성까지 비슷해지게 마련이다.

기타 만돌린 비파, 바이올린 얼후 해금 따위 악기들의 사운드는 대동소이일 수밖에 없다.

다시, ‘은비령’이다.

“(기타) 통의 크기와 모양, 통을 만든 나무의 재질이 같으면 거의 비슷한 소리가 난답니다. 그러니까 사람도 그렇지 않겠느냐는 거지요. 우선 키와 몸매가 비슷하고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면 몸속의 성대도 비슷할 테고, 또 그러다보면 하는 행동도 그럴 수 있고, 운명도 그럴 수 있는 거구요.”

“그런가?”

【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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