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지상파, 케이블, 종편이 간단없이 시트콤을 방송하고 있다. 그 중 최고는 모름지기 JTBC ‘청담동 살아요’다.

SBS ‘순풍 산부인과’(2000)가 주입한 웃음유발 유전자, MBC ‘하이 킥’ 시리즈식 미스터리와 멜로 그리고 저항의식의 버무림까지 충실히 이어받았다. 극중 역설적 배경인 서울 청담동의 남루한 인생들 하나하나는 시트콤이 구현할 수 있는 캐릭터의 백미에 가깝다.

있을 건 다 있다. 상엽(이상엽)·현우(김현우)·지은(오지은)의 러브라인, 무성(최무성)·우현·상훈(오상훈) 루저 트리오의 슬랩스틱 코미디라인, 혜자(김혜자)·보희(이보희)·관우(조관우)의 깨알생활 개그라인이 얽히고설킨다.

혜자는 군식구를 줄줄이 달고 아는 오빠의 청담동 집으로 살러 왔다. 그러나 아는 오빠의 행방이 묘연하다. 이왕 들인 발, 그들은 낡은 만화가게 건물에 기식하게 된다. 부촌의 대명사인 청담동에서 실체를 숨긴 채 주거하는 이방인들이다. 남의 빈집에 흘러든 처지여도, 어쨌든 청담동 주민들이다. ‘청담동 살아요’는 이렇게 샘이 깊은 스토리의 물을 팠다. 왕자와 거지, 야당과 여당, 반대개념은 곧 끊이지 않는 이야깃거리다.

초반 ‘도끼병 공주’ 지은의 두 왕자로 쏠리던 관심은 서서히 무성과 관우에게로 옮겨졌다. 이 시대의 처량한 40대 모습을 헛헛하게 보여주고 있는 인물들이다.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 의사이면서 처절한 패배자의 삶을 사는 청담성형외과 의사 무성이 만화방의 두 노총각 우현·상훈과 벌이는 소란스런 희극은 특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 3총사도 관우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만다. 비오는 날 우산 팔러온 우산장수를 맞이한 짚신장수 같은 혜자의 말에 따르면, 더부살이 관우는 천사다. 만화방의 그 모든 패배자들에게 ‘아직도 내가 바닥은 아니다’는 안도감을 주는 먹이사슬의 최하위다. 가늘고도 소름끼치는 전율을 부르는 미성의 관우가 퇴폐적인 가사는 어디에 두고, 비루한 말단을 이토록 천연덕스럽게 표현해내는지 경이로울 따름이다. 가수 조관우가 아니라 어디 연극판의 오래 묵은 신인으로 착각할 경지다.

일편단심 보희 누님을 사랑하는 관우는 어느날 레스토랑 여사장을 보고 가슴이 뛰는 자신의 배신에 치를 떤다. 이어 바람둥이의 꿈을 이뤘다고 환호하며 뒹군다. 그러다 이게 다 못 먹은 허약함에 기인한 것이려니 자조한다. 여기서 그치면 범작이다. 관우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날 라면을 한 봉지 얻어먹으면서 히죽거린다.

허무하고 황당한 반전이다. 인기 웹툰의 공식처럼 자리잡은 ‘병맛 주인공’의 지존급이라 해도 딱히 토를 달 자 없을 것이다. 기-승-전-결의 결은 어느새 병이 돼버렸다. ‘병×’의 그 병(病)이다.

우현은 앞의 셋에서 따로 떼어내 더 해부해 봄직하다. 제작진의 숨은그림 혹은 핵인지도 모른다.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2005)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현우의 대척점에 위치한 인물이다. 그때는 지현우, 요즘은 김현우다. 시즌이 바뀌어도 살아남았던 ‘하이킥’의 순재(이순재), 죽어서도 학교를 못 떠나는 영화 ‘여고괴담’(1998)의 한맺힌 진주(최강희)와도 맞닿아 있다. ‘평행이론’까지 갖다 붙일 수도 있겠다.

우현 말고 여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까악까악 까마귀 울음소리다. ‘올미다’에서 학습된 시청자들이 들으면 ‘청살’에서도 절로 웃을 수밖에 없는 조건반사적 음향효과다.

그런데 ‘청살’이라는 시트콤이 있는줄조차 모르는 이들이 절대다수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JTBC 프로그램은 일간스포츠와 중앙일보 딱 두 군데에만 소개하고 홍보하면 다들 보리라는 무지 또는 나태 때문이다.【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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