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귀포시지부장

   
▲ 강문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귀포시지부장
항공편을 이용하다보면 잦은 지연이나 결항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지만 물리적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누군가 투덜댔다.
“에이 비행기 하나 장만해야지 이거야 원 참”
그나마 지연되는 정확한 속사정이라도 방송을 통해 정확히 알려나주면 좋으련만 ‘연결편 사정으로 인해 지연되오니......’라는 안내방송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국내에서도 국적항공사가 7개로 늘어나면서 소비자의 선택폭이 확대된 것만은 사실이지만, 05년 대비 운항편수가 15.2%(127,771편에서 147,215편으로)나 늘어나면서 항공기 지연‧결항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인 탓에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래도 국적항공은 나은 편이다. 며칠 전, 친구들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중국을 가는데 출발부터 3시간이나 지연운항을 했다.
“3시간? ○○항공은 법도 없어, 이 정도는 다반사지 뭐”
같은 시간대에 몸을 실을 고객의 목소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어렵사리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농사일에만 파묻히다 첫 해외여행인 친구부부들 왈, ‘국내항공보다 좌석이 좁다’, ‘서비스가 없다’ 불평불만이다.
“녀석들아! 이 비행기가 에어포스원이라도 된 다더냐”

현지에 도착한 시간이 자정을 넘기고, 일정의 대부분을 버스 안에서 소비하면서 첫 해외여행에 대한 동경은 후회의 극치로 치닫는 듯했다.
중국이란 땅덩어리가 결코 손바닥은 아니었음을 체험하고 돌아오는 귀국길, 12시 항공편 시간에 맞춰 10시에 모든 수속과 검색대를 통과하고 상해 푸동공항 탑승대기실에서 앉아 있는데, 탑승시간이 한참을 지나고서야 ‘결항’이라며 전광판에 비쳐졌다. 아무런 방송도, 누군가의 설명도 없이 시간은 5시간을 넘기면서 배도 함께 곪아가고 있었다.
대기승객을 얼추 보니 내국인과 중국현지인이 절반정도로 나눠진 듯 보였다. 참다못한 한 중국여성이 데스크의 공항직원에게 고성을 질렀다. 뒤이어 또 다른 중국여성이 가세했다. 군중심리에 맞춰 남자들도 나섰다. 무얼 따지는지 구체적인 고성이야 알 방법이 없었으나 소위 ‘통밥’으로 짚어보았다.
“무슨 사정으로 결항되는 것인지 설명이라도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
“지체된 시간은 어떻게 보상할 것이며, 하다못해 도시락이라도 배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급기야 한 중국남성이 항공사 직원 멱살을 잡고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바닥에 쓰러지고, 응급차와 의사가 도착하고, 경찰이 몰려들었다. 멱실주범의 현지인을 체포하려는 경찰을 구름 같은 인파가 에워싸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시위를 주도하던 한 중국여성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던 한국인들을 향해 ‘일어나 동참해 달라’ 호소하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다.
‘중국이란 나라가 사회주의인 탓에 절대 나서지 말고, 무조건 따르는 것이 상책이다’
중국가이드가 여행객들을 쉽게 통솔할 목적으로 귀가 따갑도록 시킨 쇠뇌교육이 제대로 먹혀 들여가는 순간이다.
중국출장을 밥 먹듯이 한다는 한국인 바이어가 한쪽으로는 중국어로, 한쪽으로는 자국어로 통역해 주면서 나를 비롯해 몇몇이 시위대에 동참했다.
“비행기를 띄워라!, 비행기를 띄워라!”
“결항사유라도 제대로 설명해 달라. 외국인은 사람도 아닌가?”
이런 외침을 알아차린 유학생들이 통역을 자처하며 주워들은 지연사유를 설명했다.
“지금 푸동공항 레이더가 고장 나는 바람에 비행기가 이착륙을 못하고 있다. 언제 재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다. 우리를 수송할 비행기가 도착했는데, 레이더고장으로 착륙허가를 받지 못해 공중을 배회하다 유류가 떨어지는 바람에 다른 공항에 불시착했다. 그게 와야 우리가 간다.”
“우리를 실은 비행기가 제주에 가야만 제주에서 상해로 들어올 탑승객을 싣고 오는데 아마 제주공항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바이어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은 흔히 겪는 일이다. 아마 밤 12시가 돼서야 인근 호텔로 보낼 것이고, 다음 날 비행기는 당일 탑승자가 우선인 탓에 결항된 탑승객은 후순위로 밀리면서 국제미아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별기는 언감생심이다.”
어느 게 정확한 결항사유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한국어의 설명으로 그제야 하나 둘, 팔을 걷어붙이는 이가 늘어났다.
“비행기를 띄워라!, 비행기를 띄워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는 해봤어도 외국에서의 시위는 필자도 처음이다.
잠시 후, 배달된 도시락은 탑승권확인으로 일일이 나눠졌다. 이제 체면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퉁퉁 불어 튄 다리를 붙잡으며 콘크리트바닥에 도시락을 펼쳐들고 살기위해 주섬주섬 밥을 먹었다. 기름에 튀긴 돈가스 하나가 반찬의 전부인 도시락이지만, 투쟁으로 얻은 값진 수확이다.
도시락 먹는 순간만큼은 휴전을 가질 수 있었으나 배가 부르자 다시 시위는 시작되었다.
“비행기를 띄워라!, 비행기를 띄워라!”
그러는 사이, 공교롭게도 우리보다 늦은 시간대의 나고야와 오사카편은 속속 이륙하고 있음을 전광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정말 레이더기지가 고장난 것인지, 아니면 부분적으로 재개가 된 것인지는 모르나 ‘그러니까 좌우간 나라가 잘살고 봐야 한다니까’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상해의 화려한 거리, 강태공의 전설 속 자연풍광은 기억 속에 남는 것이 없다며, 제주4.3의 비극을 안고 살고 있는 우리 제주인만이라도 30만 현지인을 무참히 학살한 일본군의 만행이 서린 남경대학살현장을 찾아 분향하는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며, 10시간 버스길을 마다않으며 찾아왔는데 그런 후손에게 먼저 이륙을 허가한다는 사실에는 분통마저 치달았다.
결국, 9시간을 버틴 끝에야 고대하던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올 수 있었다.
“국내 항공이었다면 초죽음을 면치 못했을 거야”
“회장이 나와서 사죄했어야 했지. 암~”
“우리나라였으면 언론 한 방에 특별기 띄웠을 걸”
외국에서는 한마디도 못하던 사람들이 비행기에 몸을 싣자, 자국에서는 스스럼없는 파워의 괴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이율배반적인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인터넷에서 국내항공사를 고발한 용감한 소비자권리 이야기를 접했다. 상대지역의 기상악화 탓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항공사측의 설명을 기체결함 탓으로 지연되었다는 사실을 후에 알게 되면서 분통을 느꼈다는 그의 이야기가 가슴에 전율을 타고 흘렀다.

제주 신공항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무비자제도 시행으로 관광객입도가 증가하면서 2019년 항공교통량의 포화가 예상된다는 용역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만도 이미 1720만 명의 한계수용능력을 1254만 명이나 초과한 과포화상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자연재해로 인한 활주로의 폐쇄 1시간만 하더라도 세계 곳곳의 거미줄 같은 연결편까지 동시 마비가 되므로 이미 공항은 공황상태로 접어들게 되어 있다.
이제 제주 신공황 건설문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내 나라 내 고향의 현실이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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