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광화문’을 바라는 국민이 58.7%다. 지난해 말 문화재청이 조사한 결과다. 반면, 문화재 전문가들은 ‘光化門’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다고 한다.

현판이 한글로 결정되면 ‘월인천강지곡’에서 광·화·문 세 글자를 뽑아 새기고, 한자로 굳어질 경우 조선시대의 그럴싸한 글에서 光·化·門을 집자하거나 요즘 명필더러 쓰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생각인 듯하다.

하필이면 왜 월인천강지곡인가. 당초 광화문은 그저 ‘정문’이었다. 세종대왕이 집현전에 명해 새로 지은 이름이 광화문이다. 광화문 작명자라 할 수 있는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을 존중해 세종대왕의 저서 월인천강지곡에서 집자하자는 상식적이고 타당한 발상이다.

그런데, 알았는지 몰랐는지 월인천강지곡에는 ‘문’자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문제다. 희대의 훈민정음 학자 박대종 소장(대종언어연구소)의 지적이다. 바른 소리[正音]를 중시하는 훈민정음에서 ‘門’의 정음은 ‘몬’이다. ‘문’은 현대의 속음이다. ‘門’의 중국 정음은 ‘문’이고 중국의 현대 속음은 ‘먼’이다. 우리나라의 현대 속음 ‘문’은 공교롭게도 중국의 정음처럼 변한 상태다. 월인천강지곡에 ‘문’자가 있을 까닭이 없다.

보물 제398호인 월인천강지곡<사진 오른쪽>은 한글은 크게, 한자는 작게 병용했다. 꼴이 좀 낯설기는 하지만, 월인천강지곡에서 세종대왕이 취한 방식대로 한글과 한자를 함께 집자해 나란히 넣는 것도 고려해봄직 하다.

<사진 위>는 기존의 광화문 현판이다. <사진 아래>는 월인천강지곡에서 ‘광화문’과 ‘光化門’을 집자한 것이다. ‘光化門’은 그대로 ‘光化門’이건만 ‘광화문’은 ‘광화몬’이다. 세종대왕 당시 ‘광’의 훈민정음은 받침이 꼭지 있는 옛이응(ㆁ)을 쓰는 ‘과+ㆁ’이고 ‘화’ 왼쪽에는 거성(去聲), 즉 가장 높은 소리 표시인 방점을 하나 찍었다. 그래도 ‘광‘ ‘화’라고 읽는 데 무리가 없으니 논외다.

박 소장은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을 말로만 존중하고 실제로는 외면하고 심지어는 싫어하는 분들이 일부 있다. 그러니 문화재청의 이 방안에 나타나는 ‘몬(門)’자에 대해서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한자와 한글의 논란은 월인천강지곡의 병용 방식을 따르면 잠재워질 것이나,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로 할 것인가 아니면 현대의 변형된 한글 표기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는다.

이 같은 국한문 혼용이 힘을 얻는다면, 내친김에 한자와 순우리말을 나란히 적자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1948년 서울사범대 이기인 교수(납북)가 엮은 ‘새 사리갈말 말광’(생물학술용어사전)은 식물을 묻사리, 동물 옮사리, 청신경 듣느끼, 마취제 얼떨약, 보호색 강굼빛, 저온 얕따수, 음문 암부끄리, 밀도 빽빽가리, 전자 번개티, 색소 빛감…, 이런 식으로 풀었다. 이 말광을 적용하면 광화문은 ‘빛 되는 문’ 쯤 되겠다.

이 교수는 특히 ‘모아된 말’(합성어) 한글화에 주력했다. “딴 나라 말로 얽어 만들어진 말이면 제 나랏말을 배우는 사람이 제 나랏글보다 먼저 딴 나랏글을 배워야 하므로 이런 말은 특수사회의 전용이 되거나 일반 나랏사람이 배우고 쓰기에 큰 곤란과 고통을 주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의 우국충정은 외솔 최현배의 ‘날틀’이 언중과 타협, ‘비행기’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박제된 지 오래라는 점이 핸디캡이다.

현 광화문 현판을 그냥 놔두면 어떠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를 따지길 좋아하고 민족의 주체성을 들먹이길 좋아한다. 애국, 애족을 외치지 않으면 불순분자로 몰릴만큼 국수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기록을 보존하고 역사의 유물을 보존하는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인색하다. 그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은연중 한국인임을 부끄러워하고 한국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고 본다. 겉으로만 애국자인 체 하면서 속으로는 조국을 증오하는 양가감정 또는 애증병존의 심리를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세대 마광수 교수의 진단이다.【뉴시스 신동립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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