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생전의 김일성은 자신이 홍경래의 환생이라고 했다. ‘임꺽정’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말인가 보다. 빨갱이(홍)가 서울(경)로 쳐들어 왔듯(래) 김일성은 6·25 동란을 일으켰다.
전쟁이 심은 레드 콤플렉스는 월드컵이 완치한 줄 알았다. ‘붉은악마’와 ‘Be the Reds’(빨갱이가 됩시다) T셔츠 물결 이후 대개들 그리 믿었다. 이념이 분단한 국가에 자생적 공산주의자가 없다면 이상하지만 위협적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한국전쟁’이라고 말해야 객관적 시각을 갖춘 교양인 대접을 받는 안보 불감증 사회에서 뜻밖의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로고에 빨강을 끌어들인 옛 한나라·현 새누리 당이 적대세력의 집중포화에 휩싸였다. 시간이 해결할 한시적 조롱이겠지만, 빨간색에 대한 반감이 여전하다는 사실은 어쨌든 확인됐다.

새누리당의 빨강을 거부하는 이들 중에는 광고나 로고디자인 전문가도 있다. 카피라이터 황주성씨(네이밍센터)는 “정치도 판매”라고 전제한 뒤 “한나라당이 15년 동안 심어 놓은 파란 이미지를 하루 아침에 빨간 것으로 바꾸다니 패색(敗色)”이라며 못마땅해 한다. “‘빨간색’하면 중국이 먼저 떠오른다. 일장기는 그 다음이다. 북한도 떠오르고….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이 빨간색을 쓰는 것은 이해가 간다. 북한 정권의 사상을 직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정당이니 시비할 필요가 없다. 한나라당은 다르다. 정치 마케팅뿐 아니라 광고에서도 빵점”이라고 비난한다.

국기에서 빨강을 지워버리고픈 애국자도 새누리당의 빨강을 저주한다. ‘태극은 한반도를 뜻하는데 위쪽은 빨갱이 차지고 아래는 파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4괘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을 가리킨다’는 태극기 관련 엉터리 해석에 공감하는 국민이다. 청홍 분리선은 지도상 휴전선 라인과 묘하게 일치한다. 남북분단 후 태극 문양대로 황해도 일부가 남으로 내려오고 강원도 일부는 북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빨강은 그러나 우리나라를 벗어나는 순간 미운털이 뽑힌다. 가장 따뜻한 컬러다. 생명과 활력, 열정으로 차고 넘친다. 외향적, 사교적인 자가 좋아한다. 용감하고 역동적인 인상을 풍기고 싶을 때도 주효하다. 생존의 빛이며 공포와 욕망을 보호받으려 할 때도 적색이 이롭다.

분노와 위험 따위의 부정적 이미지도 엄연하지만, 파워라고 해석해도 무방한 것들이다. 전쟁 신 마르스의 별 화성의 고유색이니 매우 강력할 수밖에 없다.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골라 입은 싱가포르 전통옷 색깔이 빨강이라고 탓한 국민은 없었다. 홍준표 의원의 시뻘건 넥타이는 일부 음담패설의 대상이었을 뿐 정당의 정체성과는 무관하게 수용됐다.

그런데 박근혜 의원의 빨강은 왜 안 되나. 현재 진행형 거물이기 때문이다. 표를 내가 따내도, 남이 적게 받아도 이기는 국회의원·대통령 선거의 해다. 거두절미, 취사선택, 아전인수, 침소봉대, 견강부회가 당연한 바야흐로 정치의 시즌이다.[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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