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 영화관체인의 횡포가 설 대목을 앞두고 재현되고 있다.

지난해 말 거대 극장체인 CJ CGV에게 '피해'를 입은 영화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조승우(32) 양동근(33)의 스포츠 휴먼 '퍼펙트 게임'(감독 박희곤)이었다면, 이번에는 '여신' 이민정(30)이 주연한 뮤직 로맨스 '원더풀 라디오'(감독 권칠인)가 당했다. '가해자'는 거꾸로 롯데엔터테인먼트에 속한 롯데시네마다.

21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원더풀 라디오'는 20일 하루 전국 150개 상영관에서 405회 상영돼 8730명을 모아 전날에 이어 이틀째 10위에 턱걸이했다. 누적 관객 86만9556명이다.

18일 황정민(42) 엄정화(43)의 코미디 '댄싱퀸'(감독 이석훈), 김명민(40) 안성기(60)의 스포츠 휴먼 '페이스 메이커'(감독 김달중), 엄태웅(38) 정려원(31)의 로맨틱 코미디 '네버엔딩스토리'(감독 정용주), 안성기 박원상(42)의 사회고발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 등 한국영화 4편이 함께 개봉하고, 19일 드웨인 존슨(40)의 할리우드 3D 어드벤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 신비의 섬'(감독 브래드 페이턴)이 가세하면서 빚어진 어쩔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17일까지만 해도 '원더풀 라디오'는 영진위 집계에서 전국 331개관 1578회 상영으로 3만1408명을 모았다. 11일 개봉한 할리우드 3D 만화영화 '장화 신은 고양이'(감독 크리스 밀러), 톰 크루즈(50)의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감독 브래드 버드)에 이어 3위였다. 관객은 전날에 비해 1541명(10%)이나 늘었다. 이날까지 누적 관객은 84만3241명에 달해 21일까지 충분히 1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됐다.

물론 변수는 있었다. 설을 겨냥한 신작들이 개봉하면 '상영관 찢어먹기'가 빚어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열 극장을 갖고 있지 못한 쇼박스가 배급한 영화라 상영관 유지에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래도 5일 개봉과 함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46) 주드 로(39)의 할리우드 추리 어드벤처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감독 가이 리치)을 꺾고 '미션 임파서블'에 이어 2위를 달린 영화, 남성은 물론 여성들에게도 사랑 받는 이민정의 매력으로 가득한 영화, 할리우드 대작들과 장동건(40) 오다기리 조(36)의 전쟁 휴먼 블록버스터 '마이웨이'(감독 강제규), '퍼펙트 게임' 등 한국영화 대작들 틈에서도 평일 3만명 이상씩이 드는 영화인 만큼 상영관이 급감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영화 4편이 출격한 18일, 뚜껑을 열어보니 '원더풀 라디오'는 더 이상 3위가 아니었다. 5위 안에도 없었다. 9위로 추락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상영관과 상영횟수가 확 줄었기 때문이다. 189개 상영관에서 603회 상영되면서 1만1092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관객이 2만316명 줄었다. 무려 60% 감소다.

'잃어버린 세계'까지 등장한 19일에는 더욱 상황이 나빠졌다. 상영관 142개, 상영횟수는 394회로 더 위축됐다. 그러자 관객은 6493명에 머물렀다. 관객 4599명, 40%가 사라졌다.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은 있는데 보여주는 곳이 없는 탓에 관객이 급감하는 사태가 빚어진 셈이다.

문제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3대 극장 체인 중 롯데시네마에서 '원더풀 라디오'가 더욱 차디찬 밥이 돼버렸다는 데 있다. '퐁당퐁당'을 넘어 종영 수순이다.

실제로 22일 기준 롯데시네마 서울 13개 지점 중 이 영화를 건 곳은 노원, 건대입구, 김포공항 등 3곳에 불과하며 각 1회다. 상영 시간도 노원과 건대입구는 25시55분과 25시25분, 새벽 1시대다. 영화가 끝나면 오전 3~4시다. 그나마 김포공항은 밤 11시15분 1회뿐이다. 사실상 보지 말라는 얘기다.

12월21일 개봉해 이제 한 달이 된 '퍼펙트게임'은 어떨까. 같은날 기준 에비뉴엘, 영등포, 노원, 건대입구, 홍대입구, 신림, 청량리, 김포공항 등 서울 롯데시네마 9개 지점에서 계속 상영 중이다. 상영횟수는 총 23회다. 오후 11시 이후 심야 시간대 상영이 10회, 정오 이전 오전 시간대가 5회이기는 하다. 하지만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메인시간대 상영도 5회에 이른다.

반면, CGV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원더풀 라디오'는 같은 날 서울 22개 지점 중 9개 지점에서 총 22회 상영된다. 이 가운데 심야 시간대 4회, 오전 상영은 4회다. 메인시간대 상영이 7회다.

'퐁당퐁당' 상영을 성토하면서 격렬히 맞붙은 덕인지 '퍼펙트 게임'은 CGV에서도 아직 건재하다. 서울 4개 지점에서 총 11회 상영된다. 오전은 없고 심야는 1회다. 메인시간대도 3회에 달한다.

CJ나 롯데는 물론 오리온(쇼박스) 그룹에도 속하지 않아 비교적 공정한 상영 기회를 준다는 이유로 '퍼펙트 게임' 사태 당시 공정 상영의 기준처럼 여겨졌던 메가박스-씨너스에서는 '원더풀 라디오'가 서울 10개 지점 중 6개에서 총 23회 상영된다. 심야 6회, 오전 5회다. 메인시간대도 6회다. '퍼펙트 게임'은 코엑스 1개 지점에서 3회 상영된다. 오전 2회, 메인시간대 1회다.

결국, 롯데시네마는 이번 설 대목에 '페이스 메이커', 3D 만화영화 '코알라 키드' 등 신작은 물론 자존심이 걸린 '퍼펙트 게임'(20일까지 누적 144만3281명) 등 자사 배급 영화 3편을 살리기 위해 타사 배급 영화를 희생양으로 삼은 셈이다. "앞으로 제작하는 영화는 꼭 CJ나 롯데 배급망을 태울 것"이라는 어느 영화제작자의 말이 실감나는 현실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설 신작 영화들에 비중을 두다 보니 일어난 일"이라며 "당사 배급작 뿐만 아니라 '댄싱킹', 부러진 화살', '네버엔딩 스토리' 등 타사 배급 신작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해명했다.

'원더풀 라디오'를 제작한 영화사 아이비젼 전호진 대표는 "18일부터 롯데시네마에서는 우리 영화 상영 횟수 중 96%가 사라지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면서 흥행세가 꺾였다"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다행히 CGV와 메가박스가 상영관을 유지해주고 있고, 일부러 찾아주는 관객들과 영화를 보고 SNS를 통해 호평을 해주는 관객들이 있어 설 연휴에 반드시 100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뉴시스

 

일간제주의 모든 기사에 대해 반론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됩니다.
반론할 내용이 있으시면 news@ilganjeju.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이와 더불어 각종 비리와 사건사고, 그리고 각종 생활 속 미담 등 알릴수 있는 내용도 보내주시면
소중한 정보로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일간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