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송구영신에는 조급증이 개입한다. 2012 임진년이 아직 안 왔건만, 다들 용띠해 용띠해 하는 이유다. 무엇이든 새것을 좋아하는 인지상정의 발로다.

1월23일 설날부터 임진년이지만 역학은 2월4일 입춘을 새해의 출발로 좀 더 늦춰 잡는다. 이날 이후 세상에 나오는 아기여야 용띠로 인정한다. 정확히는 2월4일 새벽 3시11분생 이전 토끼띠, 3시11분 이후는 용띠다. 3시10분59초생 토끼, 3시11분1초생은 용띠다.

용은 멋지다. 미술사학자 윤열수는 “사슴의 뿔, 소의 머리, 뱀의 몸, 물고기의 비늘, 독수리의 발톱, 입과 턱 아래 수염을 하고 있는 형상으로, 비를 내리게 하고 요괴나 귀신을 제압하는 능력이 있다. 장원급제, 입신출세, 만사형통 등 상서로운 의미와 더불어 제왕을 상징하기도 하며, 불교에서는 호불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즉 신령의 걸물이요 권위의 상징인 동물”이라고 요약한다.

그렇다고 용이 신성불가침, 절대무적인 것은 아니다. 꼬리로 배를 두드리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재주가 있는 저파룡은 도살 당한 뒤 둥둥둥둥 북이 됐다. 용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포뢰는 고래를 몹시 두려워한다. 고래만 보면 큰소리로 운다. 절간 범종의 고리 격인 용뉴에 용이 조각돼 있고, 종을 치는 당(撞)이 고래모양인 까닭이다.

용의 사생활은 그리 고고하지 못하다. 이종교배도 서슴지 않는다. 윤 박사는 “용이 구름 속에서 학과 연애해 봉황, 땅에서 빈마와 결합해 기린을 낳았다고 한다. 심지어 사자도 용의 아홉 자식 중 하나라고까지 생각할 정도”라고 귀띔한다.

서구에서는 더 내려간다. 사실상 몬스터다. 흉측한 박쥐같은 날개를 펄럭이며 화염 방사기능까지 탑재한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다. 음습한 암흑세계와 친할 수밖에 없다.

용과 용꼴도 구분해야 한다. 섭공(葉公)은 호룡(好龍), 용을 끔찍이도 좋아했다. 그의 인테리어 키워드는 용이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용의 형상들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소문을 들은 진짜 용이 섭공에게 친견기회를 주고자 강림했다. 섭공네 창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꼬리는 마루에 늘어뜨린 채 섭공을 그윽히 바라봤다. 혼비백산한 섭공은 줄행랑을 쳤다. 용이 아닌 용 스타일 컬렉터였을 뿐이다.

용은 이처럼 대개 옛날얘기 속에서나 살아 꿈틀댄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이므로 용은 나와 더욱 멀어졌다. 그래도 지지(地支)는 영원히 반복된다. 용의 왕따화를 막으려면 현대화 처방이 요구된다.

전통문화콘텐츠 개발·연구가 류관현은 “용이 의미하는 바가 인간의 층위로 낮아져야 한다”고 짚는다. “용은 과거 인간계의 상위에서 존재해 군림하던 캐릭터에서, 이제는 인간의 대중문화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또는 대중문화의 주축으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눈높이로 맞춰진다”며 “상징물의 권위를 떨쳐내야 한다”고 주문한다.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잠룡들 중 1마리를 택하는 대중이 향유하는 것이 바로 대중문화다.

5년 전과 달라질 것 없는 새해가 밝았다. (이명박)이 (박근혜)를 이기고, (정동영)을 누르는 승룡과정의 드라마가 재연되는 데자뷰의 1년일 것이다. 괄호 안의 이름만 새로 바꿔 넣으면 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1382년에 전도서로 옮겨진 글이다. 더 까마득한 기원전 4세기 솔로몬이 기록한 구약성서 가운데 하나가 전도서다.

용 마케팅이 한창이다. 흑룡이 특히 인기다. 흑룡은 용의 종류가 아니다. 생김새는 거의 같고 피부색만 다른 인종과 마찬가지 분류일 따름이다. 황룡, 청룡, 적룡, 백룡, 형태는 모두 대동소이다. 흑룡년이라면, 개중 낯빛이나 피부가 제일 검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나…. [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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