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곰브리치 세계사’라는 책이 있다. 특히 애들이 읽으면 학원 한 달 다닌 것 이상으로 유식해진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는 얘기도 잔뜩 접할 수 있다.

로마시대 현 독일에는 로마인보다 키가 크고 주로 농사를 짓는 게르만족이 살고 있었다. 로마식 도시문화커녕 생산한 농산물을 내다 팔 장터조차 없는 미개종족이다. 이런 게르만 농부들을 정복하러 온 로마군은 울창한 숲에서 길을 잃고 패하기 일쑤였다. 고심하던 로마의 장군은 아프리카 전장에서 사자를 데려다 숲에 풀어놓는 묘안을 냈다. 그런데, 사자라는 짐승을 본 적이 없는 게르만인들은 그저 큰 개이려니, 몽둥이로 때려 죽여버렸다….

피터 멘젤과 페이스 달뤼시오의 ‘칼로리 플래닛’에 따르면, 미국인이 음식을 조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하루 27분이다. TV 요리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간은 이보다 길다.

요리는 생존적인 소비인 동시에 사치재 형태의 오락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패션이자 권력이 됐다. 요리를 스포츠처럼 대결구도로 만든 ‘아이언 셰프’ 따위의 프로그램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전후사정 파악이 가능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서양 옛날얘기에서 요즘의 국제 경제와 약육강식이 읽힌다. 100조원 가까이 빠져 나갔다는 주식시장의 공포가 그 시절로 연결된다.

십자군은 1000년 전에도 아랍권 영토였던 예루살렘이 한때 로마제국의 땅이었다는 이유로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당대의 군사력은 오늘날의 경제력과 같다. 괴물 헤지펀드는 곧 십자군이다. 카노사의 굴욕은 해당 지역 지배권이 약해진 동로마 황제의 정치적 제스처였다. 신이 바라신다며, 가다가 죽더라도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황의 꾐에 빠져 그들은 이슬람 제국으로 몰려가 200년 이상 전쟁을 벌였다. 이후 유럽은 종교의 억압에서 벗어나 단결해 르네상스를 열었다. 이슬람의 아랍은 아직도 포연에 휩싸여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그들의 손익계산서일 따름이다. 세계경제의 지그재그 연동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 여파로 증시가 천문학적인 돈을 잃었다. 십자군 전쟁 무렵의 억지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정의는 죽었다.

멜라니 킹의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는 남 보여주기에 아깝다. 죽음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부터 역사상의 흥미로운 죽음을 망라했다. 유명인의 충격적인 죽음도 상당수 있다. 나만 알게 됐다는 행복감에 웃음이 절로 난다.

몹시 주관적인 위 책들과 달리 교보문고는 ‘2011년 올해의 책’으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 심보선의 ‘눈앞에 없는 사람’,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문영미의 ‘디퍼런트’, 클레이셔 키의 ‘많아지면 달라진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 정유정의 ‘7년의 밤’을 가려냈다. 각계 전문가들이 추천했다.

이 서점은 또 톱10에 들지 못한 ‘아깝다 이 책’으로 캐빈 캘리의 ‘기술의 충격’,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 정민의 ‘다산의 재발견’,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박용수의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휴 래플스의 ‘인섹토피디아’,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헬 부엘의 ‘퓰리처상 사진’,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GDP는 틀렸다’, 이렇게 10권을 더 얹었다.

‘출판저널’의 독자들이 선정한 ‘2011 올해의 책’ 10종은 다르다. 앞의 20권에 끼지 못한 것들이 6권에 이른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송인혁의 ‘화난 원숭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박경철의 자기혁명’, 공지영의 ‘도가니’, 문재인의 ‘운명’이다.

아무거나 하나 골라 읽어봄직하다. 단, 소설이나 시 정도를 빼면 대개 번역서가 훨씬 낫다. 바야흐로 정리와 출발, 반성과 계획의 시즌이다.[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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